시민권법 개정 9개월 만에 신청서 발급 적체 11% 증가, 거의 3년 걸려
“캐나다인 조상 있으면 시민권” 법 개정 후 시민권 증명서 신청 13만6천건 돌파…처리기간 5개월→33개월로 6배 이상 늘어
레나 메틀리지 디아브(Lena Metlege Diab) 이민부 장관은 당초 의원들에게 C-3 법안이 신청 급증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시민권 증서 발급 신청이 폭증했다. (사진출처=The Canadian Press)
(안영민 기자) 캐나다 조상을 둔 사람도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지 9개월 만에 시민권 증명서 신청이 폭증하면서 처리 적체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캐나다 이민·난민·시민권부(IRCC)에 따르면 현재 시민권 증명서 신청 가운데 13만6천건 이상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신청할 경우 예상 처리기간은 33개월에 달한다.
이는 지난 8월 10일 발표된 수치보다 처리기간이 32% 늘어난 것이며, 대기 중인 신청 건수도 11% 증가했다. 법 개정 이전인 2025년 5월에는 시민권 증명서 신청의 예상 처리기간이 불과 5개월이었다.
캐나다변호사협회 이민분과 위원장인 크리스틴 벨템포 맥카시 테트로 변호사는 시민권 증명서 처리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법안이 처음 마련될 때부터 시민권 증명을 요구하는 신청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IRCC가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벨템포 변호사는 특히 내년에는 신청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시민권자인 사람들이 시민권을 증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이 업무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IRCC는 처리 지연이 법 개정 하나만의 영향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IRCC 대변인 브리아나 데일은 신청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신청 건별 우선순위 분류, 접수 절차 개선, 추가 인력 교육 및 배치, 업무량 관리 방식 개선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현재 33개월이라는 처리기간은 신청 건수가 크게 늘어난 데다 많은 신청서가 복잡해 상당한 증빙자료와 추가 확인 절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신청 폭증의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15일 발효된 Bill C-3가 있다. 과거 캐나다 시민권의 혈통 승계는 캐나다 밖에서 태어나거나 입양된 경우 사실상 ‘1세대’까지만 인정됐다. 그러나 이른바 ‘잃어버린 캐나다인(Lost Canadians)’ 문제와 관련해 법원이 해당 제한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제도가 바뀌었다.
Bill C-3에 따라 이제는 캐나다 국적을 가진 조상을 여러 세대 전까지 추적할 수 있는 해외 거주자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법 개정 당시 정부는 신청자가 크게 늘어나더라도 폭발적인 수준은 아닐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이민부 장관 디아브는 2025년 10월 의회 위원회에서 “장기적으로 수만 건 정도의 신청을 예상하며 급증은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법 시행 이후 캐나다 국립기록기관 등에는 캐나다 조상과의 혈통 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출생·혼인·이민 등 각종 기록 요청이 몰렸다. 일부 신청자는 캐나다인 조상을 7~8대 전까지 추적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RCC가 제공한 5월 31일 기준 자료에 따르면 Bill C-3에 따라 캐나다 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 가운데 절반은 미국 출생자였다. 시민권 증명서 신청이 미국인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다만 소셜미디어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고령의 미국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해 공공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대거 시민권을 신청하고 있다는 주장은 통계상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모든 유형의 시민권 증명서를 받은 사람 가운데 55세 이상은 3,650명에 그쳤다.
가장 많은 연령대는 14세 미만으로 1만6,435명이었다. 해외에서 캐나다 시민권자의 자녀로 태어난 신생아 등에 대한 증명서 발급이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14~17세는 2,880명, 18~54세는 9,670명이었다.
시민권 증명서를 받으면 캐나다로 이주하거나 캐나다 여권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권 증명서만으로 캐나다의 모든 정치적 권리가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관리기관인 캐나다 선거관리위원회(Elections Canada)는 캐나다에 실제 거주한 적이 없는 시민은 연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앨버타주의 경우에도 해외 거주 캐나다 시민이나 앨버타에 통상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시민은 주 선거 관련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시민권 증명서를 새로 발급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앨버타에서 예정된 주권 관련 국민투표 등에 투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민 전문 변호사 콜린 싱어는 처리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일해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 캐나다 이주를 계획하는 가족들에게 시민권 증명서 지연이 심각한 경제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청자는 연방법원에 ‘강제명령(writ of mandamus)’를 청구해 IRCC가 시민권 증명서 신청을 처리해야 할 기한을 설정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야당도 정부의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민주당(NDP) 이민 비평가 제니 콴 의원은 마크 카니 정부가 시민권 증명서 신청 적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IRCC에 충분한 인력과 재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최근 예산에서 2028~29년까지 공무원 3,300명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의회가 법률로 인정한 정당한 시민권 신청자들이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당 이민 비평가 미셸 렘펠 가너 의원도 정부가 시민권 혈통 인정 확대에 따른 신청 급증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신청 폭증에 대응할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다만 렘펠 가너 의원은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신청서를 일괄적으로 승인하는 방식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라며 신중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