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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분배, 왜 필요한가? _ 오충근의 기자수첩
 
냉전시대를 되돌아 보며

러시아 혁명 후 레닌은 제국주의 침략에 신음하는 제3세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일제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한반도에도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가 들어왔다. 만약, 지나간 과거지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소용없지만 만약에 일본이 말로만 내선일체를 외치지 않고 정말 조선인과 일본인을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했다면, 조선을 경제적 수탈 대상으로 삼지 않고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해주고 일본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똑같이 발전 시켰다면 사회주의가 뿌리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6.25동란 후 우리 국토는 폐허가 되고 가난했다.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에 공산주의가 침입한다. 당시는 동, 서 냉전 시대였으니까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도미노 이론대로라면 남한이 공산화 되면 일본과 태평양 연안이 공산화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자본주의 세계 형님으로서 미국은 공산주의 침입을 막아야 할 당위가 있었다.
한국이 공산화 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가난을 면하고 먹고 살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경제적 불평등, 경제적 소외감을 뚫고 공산주의가 침입하니까. 잉여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원조하는 것도 좋지만 남한이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 미국이 가난한 남한을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심정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지만 하여튼 장면 정부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경제개발 계획은 5.16 쿠데타로 무산되었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우리가 밥 술이나 먹게 되었다는 허구적 신화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쿠데타를 성공한 박정희가 경제개발 계획을 실행에 옮겼으니 신화의 일부는 사실로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이디어를 도용한 원죄는 남아 있다.
미국이 서독의 경제부흥을 도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독이 예뻐서가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인 동독과 맞대고 있는 서독이 공산화 된다면 유럽 전체가 공산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미노 이론이 맞는다는 가정하에서 서독은 유럽의 공산화를 막는 교두보였다.


작센 주의 인종주의

독일(서독)이 전후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이 된 원인은 여러 가지 있지만 미국의 도움이 컸고 단단한 경제력은 동, 서독이 통일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통독 과정에서 동, 서독의 경제력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동독은 유럽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는 천국에 해당되는 빵빵한 경제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동독의 자동차 보급 율이 세대당 한 대였다는 기록이 있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독일 민주공화국)의 5개 주가 서독(독일 연방 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을 취했다. 앨버타가 1905년 캐나다 연방에 가입하여 연방의 일원이 된 것과 같은 형식인데 작센 주도 독일 연방에 가입한 5개 주중의 하나다.
독일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어딜 가나 유서가 깊지만 작센주는 작센공 하인리히가 독일왕국의 왕이 되어 하인리히 1세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독일왕국이 시작되었으니 그쯤 되면 유서가 깊다고 할만하다.
독일 통일 후 오히려 구 동독 지역과 구 서독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졌다. 독일정부에서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경제적 격차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통일을 앞둔 우리로서는 동, 서독의 경제적 격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남, 북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구 동독지역의 국민 총생산(GDP)는 구 서독지역의 70%에 불과하다. 경제적 격차는 문화적 격차와 각종 사회 인프라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경제적 차이로 인해 구 동독주민들은 ‘우리가 2등 국민이냐?’는 자괴감에 빠지고 경제적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낀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극우주의가 파고 들었다.
독일이 난민을 받아들인 후 난민들로 인해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가끔 일어났는데 구 서독 지역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의 사고는 큰 문제 없이 수습이 되었다. 극우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난민 문제를 이용하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반면 구 동독 지역에서 일어나는 난민이 연루된 사건 사고는 극우주의자들에게 이용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8월23일 작센 주 켐니츠라는 도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거리축제에 참가한 35세 남성이 말다툼 끝에 22세, 23세 남성에게 칼에 찔려 사망했다. 두 용의자가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극우주의자들의 선동이 시작되었다. 극우주의자들은 “독일 시민이 여성을 보호하다 난민 손에 죽었다”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선동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시에서 6천명 넘는 시민이 모여 폭력집회를 열어 ‘난민 물러가라’ ‘메르켈 물러가라’고 외쳤다.
경제적 소외감에 더해 외부인과 접촉을 안 해본 폐쇄된 사회에서 느끼는 외부인(난민, 이민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극우주의자들에게 이용 당한 것이다. 경찰에서는 폭력집회에 모인 6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두 극우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가짜 뉴스에 속아 선동 당한 시민들이다. 극우주의가 구 동독 지역에서 더욱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경제적 박탈감에 좌절한 대중들에게 파고 들기 때문이다.


캐나다 부의 분배, 공정한가?

캐나다는 소득세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한국이나 미국보다는 높지만 북 유럽 보다는 낮다. 누진세가 적용되어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구조다. 누진세와 무상 의료보험 때문에 캐나다는 종종 사회주의 국가라는 착시 현상이 생기는데 누진세 및 각종 사회복지 혜택으로 캐나다가 부의 공정분배를 실현하고 있을까?
캐나다 부의 집중현상은 OECD 국가 중 최악에 속한다. 캐나다는 년간 2-3% 꾸준히 경제성장을 한다. 금융위기 때 유가가 급격히 하락 했을 때 예외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도 있지만. 그러니까 파이가 계속 커왔다는 소리다. 성장론자들이 좋아하는 말이 있다. 파이가 커지면 부스러기라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낙수효과다. 그런데 파이는 조금씩 커졌는데 부스러기는 떨어지지 않는다. 캐나다 세금제도 때문이다.
캐나다 최고 부자 87가구의 전 재산이 2950억 달러로 캐나다인 1,200만명의 재산 합친 것과 맞먹는 액수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들은 캐나다인 평균보다 4448배의 재산을 갖고 있다. 2012년-2016년, 4년 사이 이들 부자들의 재산이 37% 불어날 때 보통 캐나다인의 재산은 15% 불어났다. 캐나다 정책 대안 센터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로 캐나다에는 상속세 증여세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캐나다 세금제도는 자본 소득이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세율이 낮다. 양도 소득 세율은 경상 소득 세율의 절반에 해당하며 기업이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 소득은 세액 공제를 받는다. 즉 여유자본이 있으면 일해서 버는 것보다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서 버는 것이 유리하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이런 세금제도를 갖고 있는데 소득세에 누진세율 적용한다고 공정한 조세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인류가 고민해 온 것

인류가 원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계급이 생기면서부터 부의 분배는 숙제였다. 경제규모가 작았던 원시 농경사회나 신자유주의로 경제 규모가 메가톤 급으로 커진 현대사회나 부의 분배는 어려운 문제였다.
부가 한쪽으로 몰리면 사회 개혁을 통해 부를 분배했다. 중국 대륙에 왕조가 바뀔 때마다 토지개혁에 골머리를 앓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토지 개혁은 단골 메뉴였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며 수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각양 각색의 경제이론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었다. 성장론자들은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쪽에서는 공정한 분배를 주장했다.
기업이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이 창출되면 직원들 봉급 주고, 협력업체에 대금 주고, 주주들 배당 주고, 이런 식으로 분배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배가 끝나면 국가가 나서 세금을 통해 재분배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들이 세금을 통해 재분배를 실시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관포지교라는 우정의 대명사를 만들어낸 관중은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 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의와 염치를 알고 법이란 걸 알아 질서를 지키고 사람답게 살아 가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때 쟈꼬방은 방토즈 법을 제정했다. 반 혁명분자, 반역자, 부패 귀족의 재산을 몰수해 일반 시민에게 분배해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생산하는 민주 공화국을 만들려 했다. 나와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없고 빈곤이 광범위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기 때문에 쟈꼬방 다운 과감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관중과 쟈꼬방은 시대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고 지향하는 정치적 방향도 다르지만 인간의 삶이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다. 누구나 이 정도의 삶을 살아야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기사 등록일: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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