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상 최대’ 잠수함 사업, 한국·독일에 투자 압박 카드 꺼냈다 - 수주전 넘어 ‘제조업 이전·미국 의존 탈피’ 노린다
스티븐 퓨어 국방조달 담당 특임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필립 라포르툰 주한 캐나다 대사와 함께 창원에 위치한 한화항공우주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출처=CTV News)
(안영민 기자) 캐나다가 차세대 잠수함 도입을 둘러싼 한국·독일 간 수주 경쟁을 자국 제조업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적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철강·조선 등 핵심 제조업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정책 목표가 이번 잠수함 사업 전반에 짙게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 특임장관이 이끈 방한단의 행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퓨어 장관은 20여 명의 캐나다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함께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한국 해군 잠수함사령부 등을 방문했다. 이 일정은 한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며, 캐나다 언론 중에서는 CTV가 유일하게 방한단에 동행 취재해 잠수함 수주를 둘러싼 캐나다와 한국 정부, 기업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전했다.
∎ ‘잠수함 구매’ 넘어 제조업 이전 노리는 캐나다
캐나다 해군은 현재 운용 중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재래식(디젤)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실전 배치가 가능한 잠수함은 단 1척에 불과하다. 전량 발주가 이뤄질 경우 ‘캐나다 순찰잠수함 프로젝트(CPSP)’는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조달 사업이 된다.
경쟁 구도는 한국의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의 양강 체제다. 그러나 협상의 초점은 이미 잠수함 성능 자체를 넘어섰다. 캐나다 정부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해외 방산 기업의 공장·생산라인·기술을 캐나다로 이전시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최근 캐나다와 한국 정부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서도 드러난다. 양국은 이 문서에서 “캐나다 내 한국 자동차 산업 기반 확대와 전기차(EV) 제조 기회 증진을 위한 협력 의지”를 명시했다. 이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이후 캐나다 자동차 산업이 연쇄적인 구조조정에 직면한 상황과 맞물린다.
실제로 최근 온타리오주 오샤와의 제너럴모터스 공장에서는 1200명이 추가로 해고됐다. 캐나다 내 자동차 부문은 관세 여파로 수차례 감원 사태를 겪고 있으며, 오타와는 이를 계기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유럽 자본을 유치하려는 방향으로 정책 축을 이동시키고 있다.
캐나다는 한국에는 현대자동차 공장 설립을, 독일에는 폭스바겐의 추가 설비 투자를 사실상 입찰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앞서 캐나다가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다만 현대차는 캐나다에 생산 시설을 설립할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화는 ‘철강·조선 패키지’, 독일은 ‘정비 거점’ 강조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독일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캐나다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TKMS는 밴쿠버의 시스팬 조선소와 협약을 맺고, 수주 성공 시 현지 유지·보수 시설을 설립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화오션은 보다 공격적인 산업 연계 전략을 내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알골마 스틸과의 협력이다. 알골마 스틸은 캐나다에서 유일한 철판 생산업체이자, 유일한 독립 상장 철강사다. 이 회사는 2024년 7월 성명을 통해 “캐나다산 철강에 부과된 50% 관세(미국 무역확장법 232조)가 경영과 전망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낸 바 있다.
한화와 알골마 스틸 간 체결된 3억4500만 달러 규모의 협약은 한화가 잠수함 사업을 수주할 경우를 전제로 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알골마는 캐나다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구조용 강재를 생산하기 위한 빔 공장을 신설하게 된다. 철강은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산업이라는 점에서, 이 제안은 캐나다 정부의 이해와 정확히 맞물린다는 평가다.
캐나다 정부 내부 문건에서도 이런 방향성은 확인된다. 오타와는 지난해 11월 14일 두 업체에 입찰 지침을 전달했지만, 국가안보와 주권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CBC 뉴스가 일부 내용을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평가 기준에서 플랫폼 자체는 20%, 재무 건전성이 15%, 그리고 경제적 파급효과(산업·일자리·유지 능력)가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인 함대 유지·운영 역량이 핵심 평가 요소라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수주전은 잠수함을 누가 더 잘 만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캐나다 경제에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느냐의 경쟁”이라며 “캐나다가 한국과 독일을 상대로 사실상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에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을 넘어, 캐나다가 미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제조업 대안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승부처다. 이번 잠수함 수주전은 방산 계약을 넘어 캐나다 산업 지형을 재편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