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에드몬톤 야경은 본적이 없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 모든 도시의 야경은
나름 아름답지 않을까요?
아래글은 제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도심을 뛰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운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일종의 문화를 즐기는 기분이랄까..
스타일과 꿈, 삶의 질...이런 등등이 뛰는 것에 함께 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시내에 나갔다.
어둠이 내리는 강가가 아름다웠다.
공기는 적당히 서늘한 채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침 차안에 있던 조깅화에 바지를 바꿔 입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보우강변길..
꼬리를 문 채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불빛과
자전거로 집으로 돌아가는 통근 족들의 불빛들이 아늑했다.
매우 오랜만에 보우강가에서 달렸고 역시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그리고
peace bridge 와 캘거리 다운타운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언젠가 캘거리 야경을 제대로 찍어 보고 싶다.
캘거리에서 가장 높은 빌딩...
달리기를 했던 강가에서 바라본 야경이 아름답다. 강 남쪽(건너편) 을 따라 뛰어서 멀리 보이는 다리 훨씬 위쪽의 다리를 건너고 강 북쪽을 따라 내려온다.
그리고 대체로 peace bridge 라는 이름의 이 다리를 건너는 데 8-10km 정도 되는 길이다.
매우 많은 예산을 들여 건설한 이 다리는 그 이름과는 달리 많은 논란과 다툼이 있었다.
다리 모양은 다소 특이하긴 하다.
보우 강이 오늘은 잔잔하다. 달도 밝고..
강 폭이 짧아 장쾌한 맛은 없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은 지녔다. 여기까진 16-35mm 렌즈.
50mm 렌즈는 정직하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시각과 원근감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밋밋하기도 하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사진의 깊은 맛이 있다.
밋밋한 보우강의 소박한 모습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
50mm 렌즈로 담아 보니 훨씬 더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 곳이 더 사랑스럽다.
뛰는 사람들..
캘거리의 도심의 밤은 뛰는 사람들로 활발합니다.
새는 날고 짐승은 기고 사람은 달린다고 하죠.
생존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사람들은 쉼없이 달립니다.
조깅은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적인 인간이 만들어 낸 대단히 경이로운 놀이입니다.
개인적이면서도 스타일리쉬하고 반복적이며 약간의 중독기도 있는..
중독기는 Runner`s High 를 말하는데 이것은 뇌의 내분비 기능과 관련이 있죠.
원시 시대의 인간이 탁월한 사냥꾼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runner`s high 덕분
이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즉 이제는 사냥을 위해 달릴 필요가 없는
인간이지만 달림으로써 유포리아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즉, 달리고 난 다음에는 마리화나를 피고난 다음과 비슷한 케미컬 작용이 뇌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개도 달리는 것 좋아하죠. 개에도 runner`s high 현상이
있고 강하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개는 염색체수가 비슷하죠. 그래서 개가 잘달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느 도시건 이런 조깅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도시여야
삶의 질 세계순위권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캘거리가 어느 조사에서 살기 좋은 도시
세계 5위로 선정되었던데 아마도 달릴 수 있는 조건에서만큼은 캘거리는 상당한
수준의 도시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 캄캄한 밤에도 달리는 사람이 많은 캘거리였습니다.
글의 주제와는 빗나간 말씀이지만, 세계2차대전 후에 유행한 단어는 아무래도 실존이라는 단어였는데, 쟝 폴사르트르가 레비 스트로스와의 논쟁에서 깨지면서 실존이라는 말은 급격히 쇠태하며 구조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여, 구조라는 말이 7-80년대를 풍미하며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마더니즘으로 이어졌었죠. 10여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유행하는 단어는 Inven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대표적인 말이 \"the invention of tradition\"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인문학쪽에서는 이 말이 들어가야 책장사가 잘 될 지경입니다. the invention of world religions도 이런 경우같구요. 더 지나치면 manufacturing으로 발전됩니다. 가령, Manufacturing Confucianism같은 말이죠. 왜 이런 말이 유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식사회학이나 구성주의(constructionism)의 영향인 것같기도 하구요. 모든 문화나 지식은 그 문화나 지식이 생산된 상황 등에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최근에 제가 관심을 갖는 단어는 discovering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미쳐 몰랐지만, 과거의 역사나 문화가 발명이나 전파에 의해 형성된 면도 있지만, 그 각각의 문화는 나름대로 고유한 발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발견\" 또는 \"찾기\"라는 말이 \"발명\" \"제조\" 등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인 인식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캘거리를 등지를 돌아보거나 나나 타인들에서 무언가 새롭게 발견한다고나 할까요? 어떤 사람이 어느 지역에 가면 보물이 있다고 험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집에 돌아와 난로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자신이 찾고 있던 그 보물은 바로 집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그 보석은 이미 우리 안에 또는 우리 옆 또는 주변에 있다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캘거리는 에드먼튼보다 \"더\" 멋집니다. :)
그런 면에서 사진찍기는 발명이기도 하지만 발견이기도 합니다. 그 발견은 찍는 순간에 이뤄지기도하지만, 나중에 문득 그 사진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요즘 제 맘의 화두가 \"discovering\"라는 말이라서 그냥 엇길로 샌 댓글 답니다.
'그림같은 사진' 이라고 하셨는데 사진 Photograph 가 Photo(빛) + Graph(그림) 이니 사진 역시 빛이라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맞지요.
어렸을적부터 사진을 좋아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고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 2년전입니다.
이후의 날들은 사진을 통해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해온 날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던 '보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해 가는 시간들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진 덕분에 캘거리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고 록키는 더많은 디테일을 가지고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도 없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이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에 더 짜릿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느낌들을 새롭게하는 힘. 표현의 지평을 늘리는 것.
삶의 이야기들을 시각화하는 즐거움 등등..
사진은 참으로 많은 놀라운 발견들을 가능케 합니다.
내사랑 아프리카님의 엇길로 샌 댓글에 숨어 있는 제대로 된 해석에 공감하며
다시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사실 전 캘거리 출신입니다. 2001 년 부터 9 년 살았지요. 햇수론 이제 에드먼튼에서 더 오래 산 셈이 됐지만 여전히 에드먼튼은 객지 느낌이고 캘거리가 고향같아요.
http://happykorea.ca/comm/bbs_detail.php?bbs_num=48508&tb=board_ucc&id=&num=&pg=
캘거리의 이 다리는 지을 때 설계에서부터 말이 많았는데, 저는 완공된 후에는 한번도 지나가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