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그냥 심심해서 끄적거리는 궤변일뿐입니다.
+++
몇 주 전에 아내와 같이 코스트코로 쇼핑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아기를 안 가지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왜 사람들이 아기를 안 낳을까?'
아내가 무심한 듯 물었고 나는 단 1초 만에 그 답을 떠올랐다.
'옛날에 아기는 재산이었지만 지금은 앞날이 불확실한 투자일 뿐이지.'
'오! 그러네!'
아내가 감탄하며 나를 바라봤다 히히, 우쭐해졌다.
내가 이렇게 금방 답을 찾아낸 것은 아마도 작년 초부터 시작한 주식 투자 때문일 것이다. 평생 좌파 빨갱이로 살아오다가 나도 작년 초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S&P 500 index ETF 에 적립식 투자를 하는데 지금까지 꽤 쏠쏠하다. 오, 돈이 막 복사가 된다. 새삼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아예 전업 투자자로 돌아설까? 그럼 나도 좌파 빨갱이에서 우파 퍼랭이로 전향할게 틀림없다.
나도 이제 완연히 자본주의 돼지가 됐다. 봐라. 내 배에 기름때가 좔좔 흐른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걸 투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봤고 금방 답이 나와버렸다.
농경시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곧 농사 지을 노동력이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산은 축복이다. 나도 어릴 때 전기도 없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꽤 일을 한 기억이 있다. 비록 10살도 되기 전이었지만 산에서 낙엽을 긇어오고, 나무를 해 오고, 소를 먹였다. 때로는 수확한 밭에서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한약재를 한가득 주워 오는 일을 하기도 했다. 농촌에서 아이는 어릴 때부터 꽤 훌륭한 노동력이다.
초기 산업화 시대에 가족은 생활 공동체였다. 바로 한 두세대 전에는 가족은 모든 수입과 지출을 공유했다. 나는 첫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분가하기 전까지 내 월급 통장 관리를 모친이 했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세대는 나의 벌이는 나의 것이 아니고 부모의 것이라는 인식하에 살아왔다. 때문에 다산은 향후 가족의 많은 수입을 의미했다. 또한 자식은 부모의 훌륭한 노후 대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게 바뀌었다.
지금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부부의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헌신을 요구한다. 옛날에는 '자기 먹을 수저는 물고 나온다' 라는 인식이 강했다. 또한 5남매나 7남매 대가족 속에서 손위 언니나 누나가 자기 동생을 엄마처럼 돌보는 일도 가능했다. 지금은 아이에게 해 줘야 할게 너무나 많다. 반면에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아이에게 일을 시킨다고? 감옥에 갈 일이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은 너무나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식은 부부의 노후 대책이 될 수 없다.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식은 상장폐지될 것이 확실한 주식에 불과하다. 점점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는 화목한 가정은 그러한 투자를 감당할 만한 부유층만의 사치재가 될 것이다.
문제는, 개인으로서의 아기는 형편없는 투자 종목인데 반해 사회 공동체적으로는 사회 존속을 위한 커다란 재산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