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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논쟁(?)"을 떠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때로 삼으면 어떨까요!!! |
작성자 doublehead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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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809 |
작성일 2009-10-19 07:11 |
조회수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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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한국에 있든지 캐나다 캘거리에 있든지 오늘날의 소위 "한국형(韓國形) 교회"를 말할 때 누구는 정통(正統)이고, 누구는 이단(異端)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저의 얕은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스스로 정통 교리와 정통 신학을 앞세우는 교회라 할지라도 오늘날 교회들의 이런저런 우려되는 신앙 행태를 보면 진정 그들을 진정 “정통(正統)”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단”의 반대(?) 쪽의 의미를 “정통(正統)”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통"이 교리와 신학에 정통하다는 말 뿐이어서야 되겠습니까? “정통”, 그 말이 진정한 “정통”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누가(어느 교파와 교단이, 어느 교회가) 인간들이 소위 정통적(正統的)이라고 합의한 교리(敎理)를 받아들이느냐, 신학을 정립했느냐의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정통"이라험은 누가 그 정통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예수의 삶에 변함없이 기반을 두고 있느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진정한 “정통”의 기준은 교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종교적 인간들이 합의한 교리나 신학에 있다기 보다는, 누구의 삶(행함)이 가장 예수적이냐, 예수다운 삶이냐가 되어야 옳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교 ‘이단 판단의 기준’이 성경(聖經)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더부살이(종살이) 하던 떠돌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하늘을 버리시고 그들의 고난 현장에 함께하시며, 억압으로부터 그들의 해방을 약속하신 하나님’(출애굽기 3:7-8)이시고, ‘사회적 약자인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외국인노동자-를 보호해주시며(신명기 10:29) 그들을 위해 신원(伸寃)해 주시는 하나님’(신명기 10:18)이시며, ‘작은 자를 자신과 동일시 하셨던 예수’(마태복음 10:42, 18:10, 18:14 등)로 말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거나 추체험한 작은 이들은 그런 하나님을 “여호와”로, 그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바른 교리와 신학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바로 이 하나님과 예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리와 신학의 안내를 받아 하나님과 예수의 뜻을 오늘에 살아가느냐, 하나님과 예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른 뜻(교파, 교단, 교회, 특정 일인)을 앞세우느냐 하는 것이 소위 “정통”과 “이단(異端)”의 분기점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날 소위 '목회 성공'을 교회 대형화로 가늠하여 말하는 교회와 신앙의 풍토,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께서 그렇게도 귀하게 여겼던 작은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나눔을 백안시(白眼視)하거나 외면한 채 기복신앙(祈福信仰)으로 팽배해 있는 소위 "한국형 교회"와 그 신앙으로 어찌 자신들의 정통성 여부를 주장하고, 타 집단의 이단성을 운운할 수 있는지 ----- ?!
그러기에 다시금 생각합니다. 오늘날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일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단논쟁”이 교권을 주장하고, 교권을 수호하기 위해 타인을 정죄하는 다툼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이단 논쟁(?)"은 더욱 예수다운 교회, 더욱 예수다운 신앙인으로 곧추서도록 추동하는, 예수 안에서 반듯한 교회와 성도로 다시금 바로 서도록 독려하는 예수의 채찍질로써의 논쟁 아닌 논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좁고 한계가 분명한 게시판에서의 “이단 논쟁(?)”은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교회사 속에 수백 년 이어 온 “이단 논쟁(?)”이 여기서는 눈꼽만큼이라도 정리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이단”이라고 지목한 이들이나 “이단”으로 지목받은 이들이나 그 누구라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고, 오히려 좁디좁은 한인 사회 안에서 반목질시(反目嫉視)의 아픔만 되풀이 되고 커질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이든 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지 누구를 무론하고 “이단”이라고 누군가를 지목해야 할 때가 오면, 또 어느 때인가 누구에게 “이단”으로 지목되어서 기가 막힐 때에는, 그리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단”이라는 미명 하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때에는 누가 '옳으니' '그르니', 누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를 놓고 설왕설래 할 것이 아니라, 그 때가 되면 모든 교회들과 목회자,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과연 예수의 자녀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예수의 종다운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지?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우리의 교회가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반듯하게 서 있는지”, “우리 지역에서 교회가 교회다운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고, 그 외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나는 하늘을 우러러, 이웃 앞에서 반듯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변질되거나 흩어져 식어진 한인공동체의 사랑과 믿음을 다시금 회복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때로 삼으면 어떨지---- 이런 생각을 하는 때가 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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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
| 2009-10-19 09:3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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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에 많은 부분을 공감합니다. 반문은 아니고요. 약간의 소견을 내면요....대형교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외국(특히 남침례)에서 부러워하고 한국특성(?)상 긍정적이 견해가 많이 있습니다. 대형교회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빠르게 우리나라가 기독인들이 성장할수 있었을까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옛날 소형교회 목사님들과 담화를 나눌때도 부정보다는 긍정의 말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일단 대형교회의 부정적 기사는 제외하고요(세습,비리등 대부분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북지원,선교,소형교회지원,교인증가가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들을 갖습니다. 과연 사도바울 시대 교회적이라면 몇십명 정도인데 어떻게 선교와 지원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갖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인구의 천만명은 기독교인들인고 밤에보면 십자가 뿐이 안보인다고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좁은 땅덩이에서 이론상 10-30가구당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한국특성상 새벽교회와 셀,구역을 하는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진리와 교리는 벗어나지 않되 그당시 시대상은 약간은 반영하는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당시는 당연 인구가 지금의 수백분의 일이 었겠죠. 어제도 적었지만 이단이다 아니다 논쟁은 평신도와 혹은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도 끊임없는 불필요한 논쟁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에 성경에 접한적이 있었지만 저가 스스로 얄박한 지식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목회자들은 틀리더라구요. 하루종일 기도와 성경공부 하시는 분들입니다. 이단의 정의도 그들에게 맡기는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서 그교회 다니지말라 다녀라 여호와증0이 되라 말라 하는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인들 천만명은 이단이라하는데 3만의 만0의교회는 아니라하는데 의문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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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하는 \"대형화 \"란 크기, 숫자 등의 size에 관한 지적이라기 보다는 성서가 말하는 \"작은 자\"(소자), 곧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떠돌이, 갇힌 자, 억압된 자, 소외당한 자 --- 등을 돌보라는 하나님과 예수의 뜻을 따르기를 기뻐하기보다 소위 \"복 받는\" 데에 관심하기를 좋아하는 믿음의 잘못된 행태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의 뜻을 이어 오늘에 살아가는 사회 책임적 존재로서의 교회의 본질, 교회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거나 백안시 한 채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존재 아닌 존재로 변모해가는 불신앙의 모습을 말합니다.
[공동번역성경] 신명기 14장 29절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있는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너희하나님 야훼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다. 레위인은 너희가 받은 유산을 함께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개역성경] 신명기 14장 29절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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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
| 2009-10-19 10:0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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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표현하기 참 힘든게 저도 님이 말씀하신 그 비중을 많이 생각해서 쓴것이고 size도 30%는 염두해 쓴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형교회라 해서 무조건 물질적,불신앙적으로 몰아가서는 절대 안된다는것을 강조해 쓴 표현입니다.또한 이단의 기준은 성경만은 아닙니다. 이단교회들 대부분은 성경을 기준했다고 합니다. 참 위험한 발상입니다. 대표적인 여호와증인이 그런케이스이지요.
저가 옛날을 생각해 어제도 이재0 목사의 이단성을 읽었습니다. 한구절 한구절 댓글로 링크할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끊임없는 논쟁일 뿐입니다. 저가 올린다해도 그들은 만0교회를 다닐것이며 반문을 한다해도 저는 다르게 보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다시한번 그목사님께 묻습니다. 그렇게 병치유를 잘하시면 조용히 소록도에서 문둥병환자 좀 돌봐주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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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님, 동감해 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고,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물론 \"무조건\" 대형교회라고해서 불신앙이라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성경\"만\"이 이단의 판단 기준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해석상의 문제가 있기에 단순히 성경을 자구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한 것이고, 교리가 필요합니다. 통상 이단의 반대말(?)을 \'정통\'이라고들 하는 데 정통은 교회사에서 종교회의 등을 통해 결정한 신조와 교리를 수용하는 종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단은 이와는 다른 신조와 교리를 주장하는 종파를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이단 판단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만 이단 판단에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역시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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