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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수기) 야 빵 맛있겠다 _ 4
글 : 이경임 (캘거리 교민)

그런 와중에서도 내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밤 늦게 그이는 병원으로 나를 찾아 왔다.
나는 병원 로비에서 그이를 만나 담담하게 말했다. 헤어지자고. 의사와 선을 봤는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의 이별 선언에 그이는 아마 세상을 다 잃은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이는 우리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빼 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자기의 가슴을 X-ray로 찍으면 색깔이 시퍼렇게 되어 나오는데 그건 나 때문에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그렇게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 앞에서 사랑을 말할 수 없다나.
그이를 그렇게 돌려 보내고 나는 8층 입원실 로비에서 그이의 힘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지금 그이는 자기 가슴에 아직도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때 그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가슴이 아프다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단순히 ‘아프다’, ‘쓰리다’란 형용사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런 아픔을 말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손으로 가슴을 쓰러 내리고 또 내렸다. 그때를 회상하면 나는 아직도 코끝이 찡하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곤 한다.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내게 전화가 왔다고 간호사가 전해주었다. 그이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사택에 나더러 빨리 와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급히 택시를 타고 사택으로 향하였다. 사택 안에서는 그이의 울부짖음과 함께 그이를 달래느라 여러 직원들이 땀을 빼고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다시 부등켜 안고 울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의 이별행진곡은 또다시 시작되었고 시간이 약이란 말과 함께 상처는 겉으론 조금씩 아물어져 갔다. 그때부터 그이는 호주로 이민을 갈까 생각을 하였고 나는 어머니가 퇴원을 한 후 조용히 시골 집에서 가사일을 도왔는데 중신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조르기 시작했고 견디다 못한 나는 그이에 대해 털어 놓았다. 어머니의 어이 없고 화난 얼굴은 여지 없이 나를 향해 돌아왔고 내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었다.
며칠 동안의 지옥 같은 생활에 견디다 못한 나는 체육복을 입은 채 가출을 단행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가출한 나는 마지막으로 그이를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이에게 전화했다. 나를 잊기 위해 몇 달간 노력하고 있었던 그이는 나를 반가이 맞아 주지 않았고, 그저 별 말없이 차만 마시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그이에게 사과 하고 싶었는데....
나와 헤어진 후 나의 차림과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그이는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 이후로 그이는 내가 투숙한 여관만 제외하고 그 주변의 수 십 개의 여관을 밤늦도록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드라마에서 보면 서로 애타게 찾고 있는 연인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 가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장면 처럼 그이도 여관을 다 뒤지고 다니면서도 내가 묵고 있는 여관 앞에서는 ‘저 여관엔 없을 거야’하고 는 지나쳐 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 차곡차곡 묻어 두었던 사랑에 다시금 주체할 수 없는 불씨가 타오르듯 그날 밤 그이는 잠 못 들고 맘 조렸다. 다음날 나는 내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가게에서 일할 수 있었고 그 가게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내가 사과하지 않아도, 그이가 용서한단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눈빛 만으로 족했다.
이제 나에겐 그이 밖에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이 하나 틀리지 않듯이 나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1989년 4월 초 어느날 마침내 우리의 결혼을 승낙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우리는 하루 속히 결혼식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한달 뒤인 5월 7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식을 올렸다. 다른 집 같으면 함이 오고 가고 살림 장만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예식장 예약에 청첩장 인쇄를 하였고 방 도배에 침대 시트까지 내 스스로 만들었다. 결혼식 날 그이의 집안은 물론 잔칫집 이었지만 내 친정집안은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올려 주는 결혼식이라고 일가 친척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아 아름아름으로 온 가까운 친척 몇 분이 고작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는 양가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경주와 부산을 거쳐 동해의 백암 온천까지 3박 4일의 신혼 여행 길에 올랐다. 요즘은 신혼 여행 때 한복을 입고 가면 촌스럽다고 하지만 그때 나는 노랑 저고리에 꽃분홍 치맛자락을 날리며 그이와 함께 호텔 뒷길을 꿈인냥 거닐었고, 해운대 모래 사장에 나란히 앉아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보며 미래를 설계 하기도 했다. 밤에는 까아만 바다 수면 위로 내려 앉은 별빛 속으로 그 동안의 시름을 던져 버리기도 했다.
우리가 신혼 여행에서 돌아 올 때 까지 어머니와 언니 가족은 우리가 둥지를 틀 아파트에 계속 머물렀다. 대개는 신혼 여행 후 친정 나들이를 하는데 내 어머니는 사위의 모습을 동네 친구 분들께 보여주기 싫다고 그때까지 우리의 아파트에서 우리가 돌아 오길 기다렸다. 결혼 이후에도 어머니는 사위를 시골에 못 오게 하였고 진정으로 사위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결혼을 승낙한 어머니라고 그이는 장모에게 최선을 다 하였다. 매달 병원에 가서 혈압 약을 타오고 건강이 안 좋다고 연락이 오면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두시간 거리를 총알 같이 달려가 모셔오곤 했다.
그렇게 한달 두 달, 1년 2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응어리진 마음은 고마움의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세상에 우리 사위 같은 사람은 없다고. 매년 여름 휴가땐 바다로 산으로 여행 가지 않고 장모님 혼자 계시는 시골에 가서 휴가를 보냈다. 어머니는 우리의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고 “니 언니나 니가 남편과 사는 모습을 보니 너들 아버지 살아 계셨을 때 좀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하셨다.
이제 우리는 이곳 캘거리에서 다시 둥지를 틀었다. 2000년 1월 11일 밤 11시. 끝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밴쿠버에서 비행기에 갇힌 채 세 시간을 보낸 후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눈 밖에 없는 캘거리에 우리는 도착했다. 매일같이 영하25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했고 2주간의 민박 생활을 끝낸 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얼마 동안 나가지 못한 성당을 찾아 고해성사도 보았다. 이국만리 아무런 보장도 없는 낯선땅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거나 짜증을 게 된다고 신부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그때 신부님 말씀이 이곳에 오면 애정표현을 자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잘 하지 못 하였더라도 이곳에 와서는 '당신, 사랑해.' 하던지 자주 안아 주고 뽀뽀도 해 주며 서로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확인시켜 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상대를 사랑하더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표현을 하게 되면 사랑의 기쁨은 풍선 처럼 두배, 세배로 부풀어 질 것이다.
이민 온지 몇 달 되지 않아 큰 아이가 많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민 온 것을 그때 처음으로 후회 하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그놈의 응급실에선 아이가 아파 죽는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는데 의사는 고사하고 빈 방이 없다고 복도 의자에서 무작정 서너시간을 가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병명조차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냥 스트레스로 인한 어떤 것 정도로만 말 할뿐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음호에 마지막편이...)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2/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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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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