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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get USA! 그들은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나?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파괴의 전쟁이 휴전으로 치달아가는 순간에 영국에서는 또 다른 테러기도 용의자 20여명이 체포되며 세계는 다시 한번 테러 공포라는 새 국면으로 접어 든다. 마치 시나리오가 있는 듯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각국의 공항들은 즉각 중무장 경계태세에 돌입하고 액체 폭탄 공포 속에 대 소동이 일어난다. 테러를 기도한 용의자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겨냥하는 자생적 테러조직의 한 형태를 보인다.
미국 뉴욕에서 수 천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가 저질러진 이후 테러의 양상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자금과 군사력, 지원세력을 등에 업은 전문적인 테러조직들은 숨을 고르고 있는 반면에 자살공격과 자생적 테러기도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사제폭탄을 직접 제작하고 스스로 테러를 연출하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의 일그러진 반 이슬람 정책이나 행동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들을 직접 조직하고 지원하는 세력과는 줄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자생조직이다.
테러기도가 적발되고 용의자들의 신상이 밝혀질 때마다 그들은 단지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왔음이 밝혀져 더욱 큰 경악과 허탈감을 느끼게 하곤 한다. 이번 십여 대의 미국 행 민간 여객기 폭파 기도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시점은 정확히 발표되지 않았지만 검거일로부터 많이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직 변호인단의 면담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사건내막은 철저히 영국 방위청의 발표에 의존하고 있다.
최연소 17세부터 30대까지의 구성원 들은 주로 영국에서 태어난 파키스탄 계 청년들로 역시 평범한 인생행로를 걸어 온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대부분 중산층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라며 제대로 교육받은 고학력의, 전사가 되기엔 너무나 평범한 젊은이 들이 자신이 태어난 모국에 또 미국에 총을 들이대며 담담히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건이 작년 런던 지하철 폭파테러와는 달리 알 카에다와 일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당사자인 영국은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 동안도 보복 테러위협은 계속되어 왔고 전혀 뜻밖의 새로운 사건은 아니다. 오지 말아야 하지만,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랍계 통신사인 알 자지라 인터넷 뉴스에는 테러기도 적발에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큰 몫을 담당했음을 중간제목으로 뽑아 서운함을 대신 표현한 듯도 보인다.
파키스탄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에 의해 주도 된 테러와의 전쟁에 전초기지를 제공하며 첨병 역할을 수락했었다. 우리의 간도문제와 흡사한, 지금 인디아에 합병되어 있는 펀잡지방 분쟁에 미국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국민들과 이슬람 국가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국익을 염두에 둔 적과의 동침 일 뿐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과연 이라크는 안녕한가? 남의 집 가정사에 끼어들어 후세인이 맘에 안 든다고, 그래도 한 집안의 가장을 무참히 짓밟고 자기 코드에 맞는 새 신랑으로 바꿔 치기 한 것과 다름 없어 보인다. 총을 들이대고 자식새끼들 보는 앞에서 합방시키며 그 장면을 훔쳐보고 즐기듯 욕 보이는 짓거리는 또 무슨 참극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내전양상만 심화되고 있다. 이라크 현 정부 내에서도 미국만 손 떼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하소연이 나온 지 오래다. 테러와의 전쟁이 몇 년째 계속 되어도 알 카에다는 해체되지 않았고 빈 라덴은 건재하다.
위험만 늘리고 경계수위만 높아져가고 있는 건 아닌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신 나간 밀어 부치기가 불을 지피며, 죽어가던 알 카에다를 살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 편으로는 사전 검거된 이번 테러기도 사건 파장이 미국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부시정권의 시국인식 발표에 이어 미국 국민들의 부시 지지율 상승 등이 뒤 따르는 모양이다.
9/11 이후에도 세계경제 성장속도는 둔화되지 않았고 그 대부분의 몫은 역시나 미국 차지였다는 분석에 따른 것일 것이다. 단시일 내 해법 찾기에 대한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찜찜한 휴전에 돌입했다. 화해는 결단코 아니다. 휴전이 카운트 다운 되던 최후의 순간에도 아쉬움을 달래 듯 포성은 더욱 커졌고 건물은 무너져 내렸으며 무고한 시민들은 나뒹굴었다.
제공권을 완전 장악하고 레바논 하늘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공습을 계속하던 이스라엘은 휴전 직전 레바논 하늘에 삐라를 살포했다. 까불면 언제라도 “I’ll be back!”이라는 친절한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 포로가 된 두 명의 자국 병사를 구출한다는 빌미로 시작된 레바논 침공, 희생된 이스라엘 자국병력 손실만 전사자 백 명을 넘어 섰다. 숫자 놀음을 떠나서라도 그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명의 포로는 돌아오지 않았고 헤즈볼라는 여전하다. 레바논의 인명손실은 천 명에 이르고 그 중 90% 이상은 민간인 사망자로 믿어진다. 죽도록 얻어 터지고 난 후 고소는커녕 치료비도 제대로 받아 낼 길 없다. 하소연 할 데 조차 없다. 이 정도로 터지고 나면 죽을 죄를 지었다 해도 죄 의식은 없어질 것이다.
학교서나 군대에서나 권위에 눌려 억울하게 맞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너 죽고 나 죽자 식 원한 만이 남을 수 있다. 같이 죽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는 애초에 생각지 않았지만 패하지도 않았다.
공포도 오래가면 일상이 된다. 결국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이대로 평화가 정착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휴전은 오래지 않아 다시 포성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측이, 참혹하지만 몇 십 년간 지속 되어온 중동현실이다. 벼랑 끝으로 밀어 부치면 거기에 배수의 진이 들어서고, 진중에서는 또 자생적 테러가 싹틀 것이다. 그럴 것이다.
호주 출신 배우이자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 제작자이기도 한 멜 깁슨은 얼마 전 음주운전 상태에서 경찰에 체포되자 유태인이 악의 근원이라는 투의 비방 욕설을 퍼부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캘거리의 지역 라디오방송 CHQR에서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 “멜 깁슨의 차기 영화를 보러 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응답자 중 캘거리 시민 83,3%가 “보러 가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한 백악관 출입기자가 부시 대통령에게 멜 깁슨을 용서 할 것이냐고 짓궂게 묻기도 했었던 모양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상하고 부적절한 관계가 흥미롭다.
9/11 직후에도 세계는 항공기 테러 위협 앞에 쩔쩔 매며 큰 혼란에 빠졌었다. 여행객은 물론 수하물 수출입에 지장을 초래하며 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급속히 추진되던 세계화(Globalization)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우려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당장 현실이 되지는 않았었다.
영국에서는 이번 사건과 연루된, 또는 다른 테러를 음모한 용의자 들에 대한 추가검거 임박 설이 흘려지고 있다. 이미 미수에 그친 테러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쓰나미처럼 거칠게 번져나가고 있다. 구상 단계의 사전 모의에 불과하더라도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고 미소를 지을는지 모른다.
거기에 목적과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크게는 아메리카니즘을, 작게는 시오니즘을 피로써 고발하고 있을 것이다. 한 발씩 물러서지 않으면 화의도 평화도 없을 것이다. 테러의 역사는 인류역사와 함께 한다고 한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곳에서 그 힘에 저항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해도 거기엔 불특정 다수의 무고한 희생과 파괴가 부득불 뒤 따라, 정당성을 인정 받기엔 너무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부 될 수 밖에 없다. 가슴 아프지만 옳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역사인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테러를 기도하는 자들이나 마찬가지로 테러를 유도하고 시국을 조장하는 음모세력이 있다면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누르면 찌그러지거나 튕겨 나가지만 너무 누르면 터진다는 것은 분명한 이치다.
또한 전쟁이나 테러나, 피해자는 언제나 민간인이다.
비행기 안에 물병도 못 들여가고 눈치 보며 맨 발 벗고 올라야 하는 굴욕을 불러온 현실, 과연 누구의 잘 못인가. 이러다 자동차 운전할 때도 헬멧을 쓰고 방탄조끼를 입지 않으면 교통경찰 단속에 걸리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가, 두려워 지는 것은 바로 민간인인 우리들이다.
전쟁이나 테러 공포로부터의 해방, 그날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는 우리 편이 아닌 듯싶다. 캐나다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한국이나 캐나다에서나 우리들은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로부터도 가끔은 보호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만, 어느 날 미국이 우주에서 새 행성을 찾아 내고 신천지를 향해 콜럼부스를 앞장세워 홀연히 지구를 떠나 간다면, 남아 있는 우리들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떤 세상이 올까? 그러지 않더라도 언젠가 사람 사는 세상, 좋은 세상이 올 때, 그 날에 떳떳해 질 수 있도록 미리 증인이 되어야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방정맞은 생각이지만, 인류가 너나 없이 모조리 멸망하기 전에 말이다.

글: 김대식 기자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8/18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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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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