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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대식 기자
입에 담기 주저하거나 목소리를 낮추고 싶은 불순하고 불경시 되는 단어, 과거로부터 있어 왔던 자살에 관한 기억은 세대에 따라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최초의 여성 성악가이자 관비유학생이기도 했던 신 여성, 현해탄에서 투신한 윤심덕의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는 염세적인 노래 ‘사의 찬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한 시절을 떠들썩하게 하며 불꽃처럼 사랑하다 가길 원했던 독일 유학파 전혜린을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고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끝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놓아버린 60년대 한 지성의 죽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열병을 앓게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지적 유희 끝의 자살이 한편 낭만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지기도 했다. 까뮈의 이방인에서처럼 ‘작열하는 태양이 눈부셔’ 모로 쓰러지는 일도 다반사던 시절 이었다.
‘자살론’ 이라는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한 어느 여류시인은 늘 죽음 주위를 맴돌며 독을 흘리기도 했지만, 정작 다행히 아직 살아 있기도 하다. 어리석은 혹자는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며 글쓰기의 행보를 눈 여겨 보기도 했을 것이고, 그 배신에 허탈해 했을 지도 모른다.
또 근자에는 정. 재계의 굵직한 인사들이 투신을 감행하며 큰 파장을 불러 온 기억도 멀지 않다. 지난 2003년 한국사회를 휩쓴 자살 신드롬은 연간 자살 1만 명 시대를 확고히 자리잡게 한 주 동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자살은 집단 모방자살 심리를 부추기는 힘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은 연예인들의 자살일 것이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영향력이, 관심의 대상이 대중적 스타에게로 그만큼 자리를 옮겨간 것일 것이다.
홍콩에서는 스타 장국영의 죽음이 그랬다. 이 보다 먼저 일본의 전설적 밴드 X-Japan의 리드기타 히데의 정상에서의 죽음은 열도를 마비시키다시피 했었음을 기억한다.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수 십대의 기타가 조화 속에 묻혀 있던 그의 숙연한 장례식, 검은 타이를 맨 채 웅크린 동료 멤버들, 돌아선 채 울부짖듯 조곡을 마무리하던 리드 보컬 토시의 절규, 한 동안 일본 전역을 흔들며 큰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어느 겨울에는 드라마 ‘불 새’와 영화 ‘주홍글씨’로 한참 촉망 받던 여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이 속보로 전해지며 파문이 일었었다. 지독한 우울증이 죽음을 불렀다고 한다. 영정 속의 해맑게 흩어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며 왜? 라는 긴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은 어떤가. 그렇다.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다. 서울 발 최신기사에는 하루 평균 38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전하며, 작년 1만 4천 명의 자살인구는 사상 최악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란 우울한 소식도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 받지 못하며, 스스로 그렇게 이름을 지워 나갔다. 이는 OECD국가 중 1위라는 또 하나의 불명예를 안겨준 것으로 확인되며, 곧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진단이 따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가 자료를 통해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캐나다로의 이민자 수가 많았던 지난 2000년 6,460명이던 숫자가 다음해 1만 2천 227명으로 크게 늘어나며, 1만 명을 넘긴 첫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살 급증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기사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기껏 생각하는 게 경제적 처방이라면 기대할 건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생계형 자살이 뒤따르고 있는 현실이 마냥 현학적인 분석만을 할 수도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작금의 사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폭력’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며 공범이 될 수 있단 얘기가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와 배타, 그로 인해 소외를 불러 왔을 것이며, 힘이 지배하는 사회, 가식에 휩싸여 탈 춤이 난무하며 사회정의라고 부르짖는 사회, 그리하여 성공이라는 사회적 성취와 성공한 자들끼리의 연대로 모든 과거의 역사가 용서 받는 사회라면 어지럼증은 치유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그들만이 승자가 된다.
바닥에서는 무한경쟁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상처 주고 상처 받는다. 논리는 없다. 오직 승리만이 있을 뿐 2등도 없다. 이미 오래 전 어느 자칭 일류기업이 자사 CF를 통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큰 재미를 보기도 했다.
자녀교육은 게릴라 전사교육보다 더 비인간적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내 몰고 있다. 혼돈의 세월이다. 이제 그만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던 예비군 정신은 잊자. 주위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때려 잡아야 할 무장공비가 아니다. 어수선한 세상에 마음잡기 힘겹고. 추서려 나가기 벅차다. 떳떳하지 못한 승리는 납득할 수 없는 패자를 양산할 것이고, 사회혐오는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죽을 용기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살은 패자의 길이라고 죄악시하며 몰아 부치는 듯한 위로는 삼가 하자. 아무런 비책이 되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오는 9월 8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자살예방의 날’이기도 하다. 별 희한한 날이 다 있다. WHO는 특히 노년층 남성과 청년층에서 발생률이 증가세를 나타낸다고 분석한다. 자살발생 비율에 따라, 국가별로 달리 채색해 홈 페이지에 올려 놓은 그들의 세계지도에는 한국이, 특히 한반도 남쪽만이 새빨갛게 칠해져 있어 그 위험수준을 경고 받고 있기도 하다.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은 먼 길 떠나와 문화적 충격을 극복해가며, 캐나다에 머무는 우리들 이지만, 직.간접적으로 한때 그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지도 모른다. 본 신문(5월 12일 자)에서도 앨버타 오일 붐에 따른 급격한 변화와 혼란으로 많은 가정이 파국으로 몰리고 있으며, 사적인 고민과 가정사를 함부로 털어 놓을 수 없어 속앓이 하는 우리 교민사회도 그 위험으로부터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이미 보도한 바 있다. 혹시 싸구려 보신식품을 찾아 중국시장을 떠돈 일이 있다면, 피가 되고 살이 되며 마음과 정신 건강에 약 발 받을 양식도 한번 구해보자.
가을이 완전히 자리잡기 전에 자신을 살펴보자. 별 이상 없으면, 주위를 둘러보자. 숨쉬고 어깨 펴는 동안, 누군가 상처 받으며 신호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귀 기울여 보아야겠다. 등짐이 무겁고 고달프면 잠시 괴로움을 내려 놓고 하늘을 보자. 그래도 눈물 나면 어디 남의 초상집에라도 찾아가 목 놓아 울다 오자.
돌아보면 유년기에 부르던 동요들 중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찌 그리 구슬픈 노래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 나이에 삶의 비밀을 깨닫는 건 불가능 했겠지만, 미리 누군가 천기를 얼핏 누설해 주고 싶었는가 보다.
그래서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른다고 노래한 모양이다. 곧 앨버타 하늘에도 휘영청 ‘달 밝은 가을 밤’이 찾아 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갈대도 기러기도 또 고단한 그대도 잠시 쉬어 가 보자. 멀리 보면 세상은 그대 편이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9/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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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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