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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 _ 김대식 기자
추석이 다가 왔습니다. 들에는 곡식이 익었습니다. 감도 익었습니다. 밤도 익었습니다. 누나, 몇 밤만 자면 추석이야? 세 밤만 자면 추석이지.
국민학교 하급 반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글이다. 다음 한 쪽을 넘기면 아마 ‘아침에 차례를 지냈습니다’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느덧 또 추석이 다가왔다. 전형적인 캘거리의 가을도 서둘러 익어 가고 있지만 감이 익었는지 밤이 익었는지는 확인 할 길 없다. 캘거리의 가을은 온통 노랑 일색이다. 이외수 라는 이상한 아저씨 말로는 노랑색은 노랑색이 싫어서 노랗게 보인다고 했다. 캘거리는 노랑색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멀리 떠나와 얼떨결에 맞는 명절은 낯설고 어설프다. 매년 이 맘 때면 습관적으로 언제가 그 날인지 셈해 보곤 한다. 추석은 고국의 인터넷 쇼핑 광고로부터 예고되는 듯하다.
풍요의 계절이라는 가을에도 모두가 풍요롭지는 못하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사람들 사이에선 부득이 ‘나 홀로 족’이 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의 한 역사에서는 방화셔터 오작동으로 노숙자들이 숨졌다는 소식도 따르고, 집 값에 전세가 널 뛰며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한다. 좋은 날 일수록 가슴 아픈 일들이 또렷이 보이는 법이다.
추석이란 곧 귀성 길에 하루 종일 차 속에 갇힐 지라도 어느새 길 떠나는 그런 마음 일 게다. 이 땅에서는 흙먼지를 날리며 대륙을 횡단해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일은 없을 터이니 추수감사절이 되어도 큰 혼잡은 없겠다. 마음만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래 전 도시 인구집중 문제 해결을 위해 개그맨 전유성이 내 놓은 묘안이 생각난다. 명절 귀향 후 썰렁해진 고속도로 진입로를 막고 계엄령을 선포해 다시 올라오지 못하게 막자던 기막힌 제안이었다. 번잡해진 캘거리에도 유효할 것만 같은 이 해 묵은 정책을 이 곳 위정자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앨버타 붐을 언짢게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주택시장에서는 거품론이 조용히 번지며 찜찜하게 만든다. 빚 없는 주 앨버타에서는 그래도 IMF 외환위기 같은 것은 없을 거란 분명한 사실도 큰 위안은 안되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집 값까지 폭락하면 이 놈의 시끄러운 붐에서 그나마 완전 헛물만 켜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전세대란에 세입자는 봉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CN드림 웹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번 TD경제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거품 가능성을 언급하기 훨씬 이전부터 상투니 꼭지니 하는 전문용어들이 무수히 언급되기도 했었다. 부동산 분야에서의 실물경제를 아주 장기간 몸소 체험해 온 사람들에겐 전혀 낯선 일도 아닐 것이다. 기대심리도 한편 많이 잦아든 것 같다.
한 켠에는 집 값이 뛰고 소득이 늘어도 오히려 더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몇 년 전의 캘거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이미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먼지 날리고 소음 커지고 자유경제 논리에 휘말린 도시가 더 이상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가 삶의 모든 조건을 충족 시켜 주지는 못하기 때문 일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부자란 진정 무엇인가?’ 라는 캘거리 한 교민의 독자투고가 본지에 올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에 와 살고 있지만 경제력만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순위 매김에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읽었다. 자신도 모르게 순위를 매기고 들러리 세우는 데 대한 작은 항변일 것이다. 모두가 부자 되기를 갈망하고 부자 되는 법만 공공연히 말하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고발일 것이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 누구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또 거부하지도 못하는 이율배반, 사회 전반에 깔린 의식에 반하며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역설한 것은 일면 용감한 발언으로 치부되어야 할 것이다. 캘거리는 건강하다.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만큼 상대적인 개념도 없을 것이다. 또한 성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일반적인 성취수준이 그 잣대가 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가난, 도덕적 가난, 물질적 경제적 가난이 있을 것이며 또한 비물질적인 가난도 있을 것이다.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 정의 내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쩌면 심리적인 것일 수 있겠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사회로부터 그렇게 규정 되거나 분류 되었을 것이지만 또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양심으로부터 “가난 이라뇨? 저는 가난하지 않은데요?”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원치 않은 사회적 반응에 당황하는 사이 어느새 빈자로 강제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가 가난하다고 인정할 때까지 더러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마치 TV광고 속에서 유혹하는 모든 상품을 손에 넣고 즐기지 못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사람 이라고 선동하는 것과 다름 없게 여겨질 수 있다. 그것을 다 소유하고 소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 자신을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비하한다면 이를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말이다.
사실 어떤 사람이나 집단들에서는 잘 정리된 이유로 가난을 스스로 받아 들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들은 별로 불편함마저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 우쭐대며 행복하다고 외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격하되며 정신적인 폭력을 강요 받고 있을 지 모른다.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창 밖에는 노란 낙엽 자욱하다. 잎 지는 숲에서는 쏴아 쏴아 바닷소리 난다. 바람 결에 떨어진 잎새 아래, 집 없는 달팽이들의 두런대는 소리 들린다. 달팽이들은 목소리가 작다. 가을이므로 잘 한번 귀 기울여 보자.
“여보, 둘째가 밖에서 너 혹시 구더기 아니냐고 놀림을 받은 모양이에요, 울더라고요. 듣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제가 우리도 엄연한 달팽이라고 말해 줬어요. 듣고 있지요? 낮엔 가을 햇살이 얼마나 좋았는데요. 아이들이 반듯하게 웃었어요. 들어요? ”
이 가을에는 무엇을 수확해야 하나, 마음을 갈무리할 즈음이다. 허리 숙여 벼 이삭 줍듯, 살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도 큰 수확이 될 것이다. 아픔이 크고 벅차다면 집착을 반만 덜어 내려놓아도 괜찮다. 그러면 풍선처럼 가볍고 자유로울 것이다.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을 하늘 깊어 가며 무작정한 그리움이 커진다. 먼 서울하늘로 전화 한번 넣어야지 하는 순간부터 할 말은 이미 속으로 다 말해 버린다. 막상 통화가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너무 그리워져도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다. 눈물 겨워도 보고 싶다, 두고 온 서울의 달! 공평하고 모나지 않게 둥근 달이 떠 줄 것이다.
유심히 보면 서울에서 보다 더 커 보이는 캘거리 보름달에서는 방아 찧는 토끼가 어찌 보이질 않는다. 살며시 손 내밀어 일으켜 주고 싶다. 어찌 보면 제가 제 발등 찧어 아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티 나는 향수병에 걸려 심란하게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내 쟁반 같고 빈대떡 같은 둥근 달이다.
어둠이 짙으면 달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어야겠다. 소리 내어 웃으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설령 달 맞이하며 소원 빌더라도 미친 소리는 내 뱉지 말아야겠다. 하늘이 듣고 있을 테니까, 치사하다고 놀릴 지 모르니까.
서울에도 앨버타에도 둥근 달이 떠주면 참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한가위가 아니면 다음 날 저녁에라도 상관은 없다. 그래, 기분이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욕심 내어 토론토에도 어진 달이 둥실둥실 솟길 바래야겠다. 그리고 감사하련다. 이렇게라도 감사 해야 할 차고도 넘치는 이유 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0/6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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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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