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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의 여왕 에디뜨 피아프 _ 마이클의 음악산책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단순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건데 복잡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 그럴 때 마다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가 생각난다. 1915년 태어난 그녀는 본명이 '에디뜨 조반나 가시옹'인데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했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불행은 예고 되었다. 아버지는 무능력한 곡예사, 엄마는 3류 가수. 그나마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엄마는 갖난 아이를 놔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 갔다. 아버지는 그녀를 처가에 맡기고 사라졌다. 어려서부터 안락과 평화라고는 모르고 성장한 그녀는 가수로 성공하기 전까지 온갖 가시밭 길을 걸었다. 루이 르프레 라는 카바레 주인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잔돈푼을 벌던 그녀를 무대에 서게 해주고 '피아프'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참새'라는 뜻이라고 한다. 체구가 작아서 붙여준 피아프 라는 별명이 전 세계 샹송 팬들을 사로 잡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고뇌에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는 삶의 고뇌를 겪은 그녀의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가수는 노래 부르다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노래해야 한다."고 한 그녀는 평생을 노래와 사랑을 위해 살았다. 노래와 사랑, 단 두 가지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으니 단순하고 간단한 삶이 아니었을까? 샹송을 전 세계에 알린 그녀에게는 샹송의 여왕, 샹송의 여황제란 수식어가 붙어 따라 다니고, 한 때 프랑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에 이어 세 번째로 돈 많이 버는 가수로 꼽혔지만. 그녀의 일생은 한편의 영화 스토리처럼 불행했다. 폭발적으로 인기가 오를 때 만난 이브 몽탕, 막노동하며 살아가는 이브 몽탕을 가수로 나서게 해주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서 성공을 시키며 '그가 나를 안고 속삭일 때는 세상이 온통 장미빛으로 보이지요' 라고 라비 앙 로제(La vie enRose, 장미빛 인생)을 선물 하였건만 그는 떠났다. 그 후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만나 불꽃 같은 사랑을 한다. 한 사람은 인기가수로 순회공연을 많이 해야 하고 한 사람은 권투선수로 여기저기 원정경기가 많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불꽃 같은 사랑을 했다. 에디뜨 피아프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외롭고, 너무 보고 싶어. 그러니까 배로 오지 말고 비행기 타고 와. 배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뉴욕에서 경기를 끝낸 그는 예정했던 배 대신 에디뜨 피아프 말대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추락사고로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마르셀 세르당은 그녀를 떠났다. 어처구니 없는 애인의 죽음, 나 때문에 죽었다는 자책감에 그녀는 며칠을 방에서 칩거하다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죽은 애인을 위해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를 바쳤다. 그 곡은 그 후 Brenda Lee가 'If you love me' 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안해서 불렀다. 이렇게 시작되는 사랑의 찬가, 여담이지만 브렌다 리 같은 움직이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여자 가수가 사랑의 찬가 나 I'm sorry 같은 서정적 노래를 불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마르셀 세르당이 죽은 후 그녀는 뤼시엥 부아에 남편이었던 가수 쟈크 필스를 만나 뉴욕에서 결혼했다 4년 만에 이혼하고 테오 사라포, 두 사람 나이 차이가 20년 이상 날 텐데 그리스 출신 청년 테오 사라포를 만난다. 네 번의 교통사고를 겪고 몸에 병을 안은 채 죽음을 앞두고 시작한 마지막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1962년 그리스 정교회에서 결혼한다. 그리고 1963년 10월6일 남 프랑스 요양지에서 죽어 유해는 파리로 옮겨졌다.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예술의 천재 쟝 콕토가 심장마비로 몇 시간 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장례식에 전세계에서 40만 인파가 몰렸다니 그녀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만 하다.. 돈을 엄청 많이 벌기도 했지만 그녀가 마지막 남편 테오 사라포에게 남긴 것은 유산은 커녕 수천만 프랑에 달하는 막대한 빚이었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죽어라고 노래를 해야 했고 채무자의 차압을 피해 오랜 동안 해외 공연만 다녀야 했다. 불행, 비극, 수많은 스캔들, 알코올 속에서 살아간 그녀지만 노래에 관한 열정만은 어떤 가수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평론가들에 따라서 그녀를 대단하게 취급하지 않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그녀의 노래에 나타나는 진실성과 노래를 향한 불굴의 정신을 쟌 다아크와 동등한 영웅으로 표현하는 평론가도 있다. 그녀가 죽은 지 4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그녀의 노래는 '가수는 이렇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 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샹송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도 에디뜨 피아프에게 많은 공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0/27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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