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빨래터에서 (14번째)
1999년 10월 어진이 이야기

대학 기숙사에 가있는 현이가 전화을 해서 주말에 집에 온다고 했다. 현이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현이의 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나는 Ontario 학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불만은 Ontario Academic Credits (OAC, 13학년 제도, 지금은 없어졌음)이었다. 북미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고교 과정을 12학년에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는데 유독 Ontario만은 OAC라는 것을 만들어서 1년을 더 고등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짧지 않은 1년이라는 세월을 왜 허송세월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해할려고 해도 이해가 안됐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13학년 일학기에 공부를 모두 끝내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Part-time으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게 통례였다. 세 아들 중에서 진이와 찬이는 13학년을 끝내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막내 현이는 12학년에 모든 공부를 끝내고 대학에 보내고 싶었다. 세 아들 중에서 현이가 제일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더욱기 수학과 물리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다. 현이 같으면 충분히 12학년에 OAC 과정을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현이가 10학년을 마쳤을 때
“현아~ 너 13학년 과정을 12학년에 끝내 보는게 어때?” 했다.
“아빠, 아빠는 내가 수재인 줄 아는데 나 그냥 보통 아이야!”
“야~ 임마 내가 너를 알아! 노는거 조금만 덜 하면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아빠, 나도 다른 아이들 처럼 공부하게 해줘”
“너 일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아니?”
“……”
“왜 할수 있는데 일년을 허송세월 하겠다는 건데?”
“아빠, 나도 Part-time도 하고 학교를 enjoy 하면서 다니고 싶어”
“임마, enjoy 좋아하지 마!”

Ontario의 OAC 과정은 다른 주의 대학 일학년 과정과 비슷했다. 그래서 Ontario 학생들이 다른 주의 대학에 가면 대개는 1학년 수학, 물리, 화학은 이미 모두 배운 것이라서 놀면서 공부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12학년에 OAC 과정을 모두 끝마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만약에 성적이 생각 보다 나빠서 다시 일년을 공부하게 되면 별 이익이 없는 손해보는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현이는 학교에서 그런 아이들을 종종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진이와 찬이도 13학년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는 할수없이 현이의 여자 친구 정민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현이는 정민이를 7학년 때 축구장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정민이는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여자들 보다는 남자들과 축구를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정민이는 현이 보다 생일이 7개월이 빨랐지만 태어난 해가 일년 빨라서 학년은 현이 보다 한 학년이 위였다. (카나다에서는 같은 해 1월1일에서 12월 31일 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함께 입학한다)

“현아, 내 말 잘 들어라”
“……”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하늘과 땅차인거 알지?”
“……”
“2년 후면 정민이는 대학생인데, 너는 그때 고등학생이야! 알어?”
“……”
“정민이가 대학생이 되면 너와는 딴 세상에서 사는거나 마찬가지야!”
현이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여지껐은 13학년에서 모든 공부를 끝내고 대학에 갈 생각을 하더니, 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정민이가 고무신을 꺼꾸로 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짜식 마음이 흔들리는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러니까~ 네가 OAC를 12 학년에서 끝내고 정민이랑 함께 대학에 들어가면 얼마나 좋니!”
현이는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마침내,
“알았어요! 그렇게 할께요” 하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해서 현이는 12학년에서 OAC를 모두 끝내고 다른 아이들 보다 1년 먼저 대학에 들어갔다.

순진이는 오래간만에 막내 현이가 왔다고 음식을 하기에 바빴고 현이는Sofa에 누어서 느긋하게 TV를 보고있었다. 현이의 손등을 보니 시꺼먼 Permanent marker로 커다란 “X”자가 써있었다.
‘짜식, 이게 뭐야! 어린애도 아이고…’
“야~ 너 손등에 그게 뭐냐?”
“아빠~ Quiet!” 신경질 쪼로 말했다.
“임마, 왜 집에 와서 신경질이야?”
“이게 다 아빠 때문이라구~!”
“뭐라구~ 그게 왜 나 때문이냐?”
“아빠~ 이게 챙피라구! 챙피! 알아요?”
“무슨 소리야?”
“얘~ 밥 다 됐다~ 밥먹어라”

현이는 일부러 화난 얼굴을 해가지고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주말이라고 친구들이랑 Bar(술집)에 갔단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맥주를 마시는데 자기는 Coke을마셔야 했단다. Ontario에서는 만 19세 이상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음주법은 아주 철저해서 만약 19세 미만의 사람들에게 술을 판매했다가 발각이 되면 술판매 허가증을 박탈 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찾을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래서 술집에서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ID(Identification)를 보여 달라고 하고 미성년자이면 손등에다 Permanent marker로 “X”자를 크게 써 놓는다고 했다. 술을 사기 위해서 손을 내밀 때는 항상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빠~ 이게 그 표시야! 알기나 해요?”
“……”
“아빠 말들었다가 내 대학 생활을 망쳤다구요!”
“야~ 그까짓 술 좀 안마시면 안돼냐?”
“아빠~ 모두 맥주를 마시는데 나혼자서 Coke을 마셔야 하는 기분을 아빠가 아세요?”
“……”
“정말 쪽팔린다구요~!”
“…… 그럴수도 있겠구나! 미안하다!”

“지금 미안하다고 하면 뭐해요?”
“임마~ 그렇지만 너는 정민이랑 함께 대학에 다니자나?”
“……”
“술이 중요하냐? 정민이가 중요하냐?”
“둘다~!”
“짜~식, 찍소리 하지말고 가만이 있어!”
“아빠~ 정민이는 내가 고등학생이였더라도 고무신 꺼꾸로 안 신었을꺼야!”
“너~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는거 모르는구나!”
“……”
“언제 변할지 모르는게 여자 마음이야! 알어?”
“하여튼 난 아빠 때문에 대학생활을 구겼다구요!”

창 밖에 빨갛게 물든 단풍닢이 떨어지고 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꼬리글: 현이에게 조금 미안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12학년에 OAC를 끝마치게 한 것은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밖에 없는 대학 1학년 생활을 다른 친구들 처럼 즐기지 못했으니……

그런데 몇달 지나고 부터는 손등에서 “X”자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현이는 찬이의 오래 된 운전 면허증을 사용해서 Bar에서 맥주를 사마셨다고 했다.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찬이와 현이는 사람들이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고 했다. 우리가 보기엔 아닌데…… Canadian들은 Asian들의 얼굴이 다 똑같아서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지금은 현이가 나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 보다 일년이 빠르니까,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한 게 많다고 했다. 직장에서도 “어린 놈이 똘똘한데?” 라고 하면서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다행이다! 부모의 지나친 욕심은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기사 등록일: 2006-09-28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캐나다 소득세법 개정… 고소득자..
  로또 사기로 6명 기소 - 앨버.. +4
  웨스트젯 캘거리 직항 대한항공서..
  성매매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 한..
  캘거리 의사, 허위 청구서로 2.. +1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4
  주정부,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
  미 달러 강세로 원화 환율 7%..
  캘거리 고급주택 진입 가격 10..
  해외근로자, 내년부터 고용주 바..
댓글 달린 뉴스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4
  오일러스 플레이오프 진출에 비즈.. +1
  로또 사기로 6명 기소 - 앨버.. +4
  캘거리 의사, 허위 청구서로 2.. +1
  돈에 관한 원칙들: 보험 _ 박.. +1
  2026년 캐나다 집값 사상 최..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