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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_최우일 칼럼
 
<편집자 주> 최우일선생은 최근 한국인 미국 밀입국 사건과 관련하여 수감된 한국인들의 통역을 맡으셨으며 이 글은 최선생이 이번 통역일을 맡으면서 느낀점을 기록한 글이다.

제소관은 서류철을 들고 앞장서 청문회실안으로 들어가며 우릴 재촉하였습니다. 억류자들은 족쇄가 채워져있어 걸음이 매우 어려운데다가 복도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집요한 촬영을 꺼려 수갑이 채워진 팔을들어 얼굴을 가리려다 뒤뚱거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간수들은 사정을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일이 이렇게 돌아 갈 것을 처음부터 예상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억울하다고 마구 화만내던 이들은 이제 굉장히 당황해 있었습니다. 고국의 부모에게 전화를걸어 어떻게던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조사관들은 이를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성년인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내게서까지도 도움을 구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통역일 뿐 취조관이나 피심인이나 어느누구 쪽에도 설 수 없는 입장입니다. 판결에 영향이 갈수도있는 언사는 물론이려니와 동정적 표정, 조그만 친절까지도 나타내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만 합니다. 알아서 어떻게 좀 해 달라는 이들의 사정을 끝내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런 내게 많이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스페인어나 그외 다른 나라말에 비해 한국어 통역의 요구가 흔치 않은 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법을 자주 어기며 사는 국민이 아닌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번같은 대형(?) 사건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민국은 물론 연방경찰, 국경감시 등 여러 기관이 한꺼번에 십수명을 조사하며 긴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속에서 난 줄곧 긴장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한밤중의 난동자를 거칠게 다루는 경찰서에 가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배후의 조직적인 전문범죄의 개입까지도 혐의받고 취조되는 것을 목격하기는 처음입니다. 그때문에 당한 통역의 어려움 또한 특별하였습니다. 한자 한마디가 여러 사람에게 큰 무게를 담고 있기때문이었습니다.
통역사로서의 나의 고충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언어습성에따른 어려움이 그 하나입니다. 요즘 새내기 부부간에 흔히 들리는 ‘오빠’란 호칭이 사실은 남편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지나서 였습니다.
연애시절부터 따라온 호칭일게 분명합니다. 서양인에게는 뜻이 전혀 다른 두개의 단어가 서로 대신될 수 있다는 것은 어리둥절한 일이었습니다. 얼마전 공항통관서에서였는데, 생김새가 닮은 두사람 간의 ‘언니’라는 호칭에서부터 오해가 생긴일이 있었습니다. 단지 옆자리에 앉아 몇시간을 같이 여행하였다는 것만으로 언니가되고 동생이된 이 두사람의 신원에 통관관계자는 신경을 곤두세웠고 결국 이것때문에 그 둘은 공연히 애를 먹은적이있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고의로 대답을 회피하는것인지 나로서는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조사관들이 피의자의 사뭇 엉뚱한 대답에 많은 곤란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 입국하였는가?’, ‘그러니까…내가 서울을 떠날 때는….사실, 난 처음부터 캐나다같은데 올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그런데….’ ‘입국 한 날짜를 묻고 있는 것이다. 언제 였는가?’ ‘아, 지난 일월에…어머님의 병환 이….빨리 좀 보내달라’ 이쯤되면 조사관은 인내심을 잃고 맙니다. 나에게, ‘이건 통역하지 말고 그냥 들어만 달라. 솔직히 말인데…..’ 나는 이런 하소연을 들어줄 처지가 아닙니다. 더구나 무슨 말이오고간 눈치를 챈 조사관은 내게 말한그대로 통역하기를 요구하므로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닙니다.
통역의 사정은 아랑곳하지도않고 제 말만 한참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물론 노트를한다해도 진술을 전문 속기하는 것도아니고, 사진판같은 기억력의 소지자가 아니면 이건 보통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좀 짧게 말해 줄것을 요청한다고 합시다. 이번에는 문장을 토막쳐 놓아서 배열이다른 우리말로 옮기는데 또다른 어려움을 더해 줄뿐입니다.
적절한 통역은 통역 혼자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배려있는 화자(話者)의속도, 끊고 이음의 적당함, 충분한 시간의 허용, 이런 모든 것들이 내가 유능한 통역이 되도록 하여줍니다.
법언어는 전문용어이기에 늘 쓰여 익숙한 것이아닙니다. 가령, ‘출국’(Departure)과 유사한 법정용어에 ‘이동명령’(Removal Order)이란 것이 있습니다. ‘추방’(Deportation) 또는 ‘제외’(Exclusion)가 여기 속하는데, 뜻을 확실히 알지못하는 피고들은 통역인 내게서 그 설명을 듣고싶어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이것을 해설하여줄 위치에 있는 것도아니고, 또 하여서도 안된다는데 있습니다. 대체로 불안하고 생소하기만한 이들은 법정에서 묻기를 꺼리고, 이것저것 전체가 잘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결심하며, 나중에는 딴 소리를 하거나 누굴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참 유감스런 일입니다.
한인교민사회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법과 관련된 사건도 많아집니다. 이럴때 시급한것은 이중어구사를 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변호인입니다.
확증이 잡혀 판결이 날때까지는 범법자가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익보장은 이런것의 해결이 없이는 당분간 어려울 것입니다. 부정당하고 억울한 처사에 불평을 하는 것만으로는 잘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이와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유능한 통역사의 확보에도 있습니다. 이민및 난민국에서는 자체시험으로 자격심사를하며 경찰에 의뢰 신원조회를 거쳐 임용하고는 있지만 워낙 부족한 통역사에다가, 그것도 늘 있는 일도아닌 것에 전적으로 매달릴 사람이 없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법언어의 한국어해석과 용어 통일의 난점도 있습니다. 법학을 전공했거나 이분야에 경험이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문제를 심사해보는것도 한 해결방법입니다.
영어를 좀 익혔다고 태만히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불려나가서 멋지게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 통역이아님을 나는 경험으로 압니다. 꾸준한 연습과 준비가 있어야합니다. 더구나 쏟아지는 방청인들이나 ‘미디어’의 시선을 감당하기란 그리 쉬운일은 아닙니다.
느긋히 방청하며 앉아있을 때와는 아주 다름을 예상하고 있어야합니다. 침착할 수없는 마음상태에서 한두마디 놓치기는 아주 쉬운일이고, 그래서 말을 연결 못짓고 우물댈 수 밖에 없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겪어보아야 압니다.
‘당신은 과거에 입국사증 발급신청을 거절당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내 말은, 지금 이 모든것을 인정하면….솔직히, 내가 왜 이런일을 저지르겠는가?’ (좀 엉뚱하고 불필요하게 길기만한 대답에 심문인은 의아한듯,)
‘그럼, 신청이 거절당한 일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없다는 앞의 질문을 인정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떡끄떡. 이 끄떡끄떡을 긍정으로 짐작한 조사관은,)
‘그럼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져으며,)
(혼란스런 조사관은,)’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다는 말인가?’
‘그게, 그러니까…..’(이제부터는 하소연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의아하다가 마침내 인내를잃고 화를 참지못하던 조사관은, 이런 일은 종종 있는일이라면서 노련한 경력인답게 웃어넘깁니다.)
재판은 여러날이나 계속되었고, 피고 모두가 결국에 가서는 혐의사실을 자인하고서 캐나다로부터 제외명령을 받았습니다. 제소관이 청구한대로 전원이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재수감되는 것을 보기는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법규를 어겼다 하더라도 억류재심 청구에서처럼 과연 이들이 캐나다사회에 그리도 위험할 인물들인가?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편견을 가지고 이 사건을 보는 것은 아닌기? 나는 지금 통역의 개인적 고충을 말하는 것 이외의 어떤 진상도 공개할 수 없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편집자 주) 본 글은 CN드림 2004년 3/12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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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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