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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진실 _ 최우일 컬럼 29
 
밤이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엄마로부터 니콜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니콜은 식당으로 연락하여 엄마가 놓고 온 안경을 부탁하였고 거기서 웨이터로 일하는 론이 안경을 가지고 니콜의 콘도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범행이 저질러진 후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범행현장목격자가 된 론도 니콜과 함께 희생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씸슨의 다친 손가락에서 흘린 피자국이 범행장소에서부터 그가 사는 집으로 따라가며 이어졌고 방안과 차안에서도 론과 니콜 두 피해자의 혈흔이 나타났습니다.
범행에 사용되었던 장갑 한짝은 현장에서, 또 다른 한짝은 씸슨의 집 마당에서 발견되었고 피가흐른 땅바닥에는 씸슨의 구두발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머리카락이며 모자며, 하여튼 이 모든 증거들은 한결같이 씸슨을 범인으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씸슨의 현장 부재증명을 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하여 부랴부랴 엘 에이(L.A.)를 빠져나갔다가 다음날 돌아온 사람입니다.
씸슨과 니콜의 결혼생활은 평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혼 이후 재결합의 화해를 시도하였지만 그마저 실패하고는 그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둘 사이의 긴장된 감정은 끝장까지도 갈 수 있을 만큼 험한 것이었습니다.
페트로첼리는 론의 가족 민사소송에서 증거를 들어 씸슨의 범행을 들춰냈습니다. 그의 변론은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과는 씸슨의 유죄였습니다. 나는 주저없이 배심원의 유죄에 동감하였습니다.
민사소송이 있던 일년 전, 코크란은 형사재판정에서 씸슨의 무죄를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피자국, 장갑과 모자, 머리카락, 차근차근히 씸슨의 알리바이를 풀어가며 배심원들의 마음에 의심의 여지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사건의 증인으로 불려온 두 백인 형사들의 증언 신빙성을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코크란의 변론은 사건담당 경찰관의 불성실한 수사와 심지어는 그들의 악의까지에도 촛점을 맞추어 갔습니다.
코크란의 변론은 논리라기보다는 웅변이었고 이 웅변은 배심원들의 인종문제에의 감정을 건드릴 만한 힘이 있었습니다. 나는 주저없이 배심원의 무죄에 동감이였습니다.
코크란의 변론이 인종감정에 호소한 것이었다면 페트로첼리의 것은 증거가 진실을 밝혀준다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삶의 드라마를 법정에서 연출하였습니다. 한사람은 씸슨을 무죄로 만들고 또 한 사람은 씸슨을 유죄로 몰아 부쳤습니다. 목격자 하나없이 정황증거만 제시된 배심재판에서의 유능한 변론은 배심원의 결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배심재판은 일반시민을 사법행사에 직접 참여시킨다는데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유.무죄의 결정은 민주공민으로서의 상식과 양심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이들의 상식과 양심이 법전문인들의 웅변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페크로첼리나 코크란 같은 일류급이 씸슨같은 인물의 명성이나 재력의 힘과 함께 할 때 진실이 왜곡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여기서 제이 알쏠(J.R. Saul)의 말을 빌려봅니다.
"법망은 구멍 뚫린 어망같아서 큰고기나 작은 고기나 할것 없이 모두, 약싹빠르거나 운이 좋거나 아니면 돈이라도 많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형법으로는 전문범죄들을 건드릴 수 조차 없다."
정의(正義)는 법의 모양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들어냅니다. 그러나 때로는 해괴한 법의 모양에 우리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세상법은 진실을 가려낼 수있는 마지막 길이 아니다"라고 한 한스 큉(Hans Kung)의 말대로 하느님이나 내세를 생각하면 억울한 이 현실에 한가닥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종교인이 아니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정의(定義)에 따라서 죄는 누구에게나 있고 궁극의 심판은, '이래서는 않되는데...'하며 스스로 자책의 짐을지는 양심의 몫입니다.
씸슨의 범행이었는가, 아니었는가는 세상법으로는 영영 풀릴 수 없는 비밀로 남을 것같습니다.
그가 진정 결백하다면 다른 누군가의 숨겨진 양심만이 이 사건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후기> 풋볼 스타였으며 스포츠 방송인이자 영화출연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오 제이 씸슨의 형사재판이 1995년에, 그리고 민사재판이 1996년에 있었습니다. 똑같은 사건으로 똑같은 피의자가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된 배심판결을 듣고 난,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11/18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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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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