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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썸' 생각 _ 최우일 칼럼
 
15년 전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어미에게서 젖을 갓 뗀 2달 배기 강아지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코를 몹시 골고 잠꼬대가 심해서 한섬(??)이라고 놀려댔지만 진짜 이름은 발음이 엇비슷한 핸썸(Handsome)이었습니다. 한섬을 핸썸이라 한 데는 이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첫 상면 때 아내는, “이 녀석은 왜 이리 누렁이냐?”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듣기 좋게 누렁이지 실은 지저분하고 꺼슬꺼슬한 털 색깔이 핸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습니다. 게다가 얼굴이 뾰족한 것이 래브라도 리트리버 순종 같지 않았습니다.
이런 녀석이 족보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아내는 못마땅한 기색이었습니다. 못난이라고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식구들이 모두 의견을 모았지만, 아무려나 이름 하나는 번듯 해보라고 우겨서 이 못난이가 핸썸이 되었습니다.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잘 생겨서 핸썸이 아닙니다.

핸썸은 씩씩거리며 아래 위층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잘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덤벙대다가 층계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간 적까지 있습니다. 아무나 보고 컹컹 짖어대고, 좋다는 짓이 얼굴을 핥아 침으로 범벅을 해 놓기가 일수인데다, 귀엽다고 쓰다듬기라도 할양이면 오줌까지 지리니 이런 별종을 도대체 어찌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게다가 천성이 사냥개라서 밖에 나가 뛰어다니는 걸 끔찍이 좋아 했습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그것도 서너 번 씩이나 나가자고 졸라대는 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귀찮은 일 이었습니다. 귀찮으니 밉상이고 그러니 트집잡힐 일이 생길 밖에....1살이 되던 해에는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다른 개들에게 미칠 나뿐 영향을 고려한 학교측의 사실상의 퇴학처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늘 이런 망나니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단맞으면서도 고까워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꾸지람을 하다가도 금새 후회스런 내 손길에 꼬리를 홰홰 저으며 한결같이 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일찍 일어나 차 한 잔 들고 내 방에 올라와 라디오를 켜고 책상에 앉아 있자면 어느새 내 발위에 소리 없이 엎드려있는 것은 녀석입니다. 조용한 이른 아침시간 음악과 따끈한 차 한 잔과 나의 핸썸, 이보다 흐뭇한 하루의 시작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녀석은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따듯한 누렁이였습니다.
핸썸이 15살, 앨리사(큰 손녀)가 다음 달이면 12살, 티파니(둘째 손녀)는 막 지난 9살, 세 살 터울로 서로 그만그만한 나이였습니다. 아이들이 핸썸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인지 핸썸이 아이들을 강아지쯤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 친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손녀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가끔만 만나 볼 수 있는 형편인데도 핸썸은 늘 이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아이가 아직 어려 장난꾸러기였을 때 핸썸의 꼬리를 잡아당기기를 곧 잘 하였습니다. 가만 놔둘 때보다는 귀찮게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눈을 찌르고 입술을 늘리며 등에 말타기를 하여도 그저 참기만 하던 인내심 많은 순둥이 핸썸 이었습니다.
몇 일전 이 순둥이 핸썸이가 여러 사람을 울렸습니다.
요즘 와서 핸썸은 나이가 많이 들어 귀도 답답해하고 눈도 침침해하였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도 전처럼 마냥 좋다고 따라나서지를 않는 것은 관절의 통증으로 걸음이 시원찮았기 때문입니다. 개의 나이 15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 나이입니다.
내가 한 나절 씩 집을 비울 때면 늙었기 때문에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나 때문에 못가고 있을걸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어떤 때, 나가자고 조르는 걸 못들은 체하고 미적거리는 것은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되도록 혼자 두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날 아침은 그래서 늑장을 부렸고 그 때문에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그 산책로가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참 청명한 초가을 아침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지난 15년을 한결같이 다니던 길을 갔습니다. 강을 따라가다 방향을 틀어 언덕으로 올라 노랗게 물들고 있는 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보았습니다.
나도 핸썸도 맘에 꼭 들어 하는 곳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나무가 무성하여 굴을 이룬 언덕길입니다. 언덕길이라고는 하지만 생각에 빠져 걷다보면 언덕인줄도 모를 만치 느릿합니다. 오늘따라 핸썸이 이 언덕을 힘겨워 하였습니다. 숨을 몰아쉬면서, 서너 걸음에 한번씩은 멈추어 서서 쉬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달래면서 길을 재촉하였고, 그러고는 핸썸이가 쓰러진 것입니다. 조금 앞서 걷던 내가 어찌 할 겨를도 없이 핸썸은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누워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생면부지의 트리쉬가 아니었으면 어찌 해야 할지 나는 혼자서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트리쉬가 전화를 걸었고 남편 부루스와 아들 폴이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들의 따듯한 마음은 병원에 가서도 금방 돌아설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우기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 한참 그렇게 우리를 지켜주었을 사람들입니다.
엑스레이 결과는 나의 우려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핸썸의 운명은 매우 촉박하였습니다. . 이번 응급상황을 요행히 잘 넘긴다 하더라도 그 다음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수의사의 의견이었고, 나는 그의 권고를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핸썸의 마지막은 고통 없이 편안할 것이라며, 지난 15년 내내 핸썸을 돌보아 준 수의사 실비아는 애써 나를 달랬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거두어내고 주사를 놓자 숨이 한 순간에 멎고 핸썸은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잠시 동안은, 죽음의 저쪽과 이쪽은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핸썸은 침상위에 처음처럼 뉘여 있고 단지 숨을 멈추었다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따듯하던 발바닥이 차가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체 할 수 없는 격정이 방안을 휩쓸었습니다. 나는 동물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수의사는 눈물같은 것이야 없는 줄 알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제 새끼에의 기쁨과 사랑은 본능적입니다. 이런 본능적인 보살핌이 없이는 생명이 대대로 이어 나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많은 동물들이 그러 하고 사람이라고 하나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의 감정만은 다른 동물에게서 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자질입니다. 어떤 동물에게는 슬픈 감정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어디 사람같이 깊을까 싶습니다. 죽음을 슬퍼하며 영혼과 내세에 대해서까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의 특전입니다.
죽음이 불가피 한 것인 줄 잘 알면서도 떠나보내려니 이리도 힘이 드는데 하물며 두고 기르던 것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나는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생존에 불가피한 살생이라는 모순 없는 세상은 왜 안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보신탕이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이 아니니 망정이지.....몇 년 전 핸썸이가 비명에 갈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 그놈 참 먹음직스러운 걸!”하며 핸썸에게 잔뜩 눈독 드리던 어르신은 보신탕 실컷 즐길 수 있는 한국에 돌아가 버린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핸썸이 죽기 열흘 전의 일입니다. 모두 다 나이 탓이겠지만, 층계를 헛디디고 넘어지면서 발톱이 빠져 피가 흐르는 앞다리를 들고서 깨끔발로 내 방에 올라와 보챌 때는 꼭 어린아이 같았는데, 가까스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이런 일이 있다니! 아끼던 한 생명을 잃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망념일 뿐이지만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생물들이 꼭 그만치만 남아 살아가고 더는 새로운 탄생도 없고 다시는 죽음이 없다면 불쌍한 마음이나 괴로운 심정같은 것이야 없어도 될 텐데......

슬픔이 없는 천국은 왜 멀리만 있는 것일까?
핸썸의 흔적은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습니다. 핸썸의 밥그릇을 보자 아내가 울어 버렸습니다. 핸썸이 쓰던 목띠 담요, 장난감 어느 것이나 눈에 뜨일 때마다 한 번 씩 울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도리스와 글렌이 다녀갔습니다. 얼마 전에 잃은 자기들의 개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길에서 마주친 쥬디도 울먹거렸습니다. 지난 수년을 산책하며 스친 이름모르는 어느 부인은 나를 안고 토닥거리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힘들어하는 우리 두 내외를 위하여 두 분 미세스 리는 하루를 틈내주기도 하였습니다.
루시는 먼저 간 맥스와 달라 덤벙대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개입니다. 어찌나 뛰어 오르는지 그 차갑고 질척한 코를 내 얼굴에 문지르고는 합니다. 이 녀석 식의 반갑다는 인사법입니다. 꼭 핸썸이 어렸을 때 같습니다.
이 루시의 주인 크리스는 이웃이라기 보다는 루시의 주인으로서나 산책하다 마주치는 사람으로서 더욱 나와 가깝습니다.

오늘은 만나자마자 내게 루시를 몇일 빌려가라는 뚱딴지같은 제안을 하였습니다. 참 고마운 배려이지만 아무려나 핸썸만이야 할까, 나는 거절하였습니다.
핸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리고 또 낯선 사람들까지 울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은 그냥 슬픔이 아닙니다. 우리 식구들과 핸썸과의 15년의 세월을 두고 다져진 그 모든 것입니다.
이제 나의 가슴에는 핸썸 모양의 공허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만 이 슬픔이 스치고 나면 오래두고 이 빈자리를 메울 것은 핸썸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핸썸의 사랑은 계산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계산 안 맞으면 변절쯤은 대수가 아닌 뭣만도 못한 인간들이 당당한 지금 세상이라면 이럴 때 일수록 어쩌면 사람보다 나을지도 모를 개의 충정은 기리어야 될 일이겠습니다.

개와 사람 관계는 역사가 불과 1만년을 넘지 못하지만 수 백만 년을 두고 이어온 사람끼리의 관계는 난처하기도 때로는 불결하기까지 한 것은 따듯한 가슴이 아니라 사리사욕에 밝은 머리만 커져버린 까닭입니다. 머리만이 아닌 가슴으로도 사람 사는 법을 익혀야 되겠습니다.
핸썸은 제가 좋아하는 산책길에서 쓰러졌습니다. 나 없는 텅 빈집에서 홀로 삶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는데, 녀석의 신통력이 때와 터를 미리 잡고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 것이라고 나는 굳이 믿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금 그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나는 산책 갈 채비를 서두릅니다. 엊그제부터는 나 혼자만 걷는 길이 되어 버렸지만 핸썸을 꼭 빼 닮은 내 마음의 빈자리에는 항상 그의 기억으로 채우고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0/20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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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1-07
Tommy | 2022-01-03 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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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에 우리와 상의도 없이 딸 아이가 강아지 한마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개는 전혀 좋아하지 않던 아내가 그렇게 이뻐하며 친구처럼 장난감 처럼 잘 데리고 놀고 이뻐해요 남편보다 개를 더 좋아해요
어떤 자료를 찾아가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해서 아내에게 보내주었더니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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