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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5> 글 : 이호성 (캘거리, 소설가)
 
5

퇴근하려고 창 밖을 보니 어째 날씨가 좀 스산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모습이다. 안선생이 잠시 망설이자 체육 선생이자 학생 주임인 임선생이 얼른 나선다.

“비님이 오실 것 같네요. 오늘은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잠시 그럴까? 망설이던 안선생이 임선생 집이 반대편이란 게 생각이 나 바로 대답했다.

“아니 됐네… 버스가 편해..”

“차가 많이 고장났나 보죠? 벌써 4일짼데요…”

잠시 깊은 숨을 들어 마신 안선생이 우산을 꺼내 들며 짧게 대답했다.

“내일 봅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안선생은 마음이 좀 불편했다. 임선생 말대로 벌써 4일째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거기다 3일째 되는 날까지는 그 중늙은이가 트럭을 몰고 나와 자신을 기다렸지만 오늘 아침에는 나오지 않았었다. 포기 한 것 아닌가?

여느 때처럼 발을 씻고 저녁을 먹고 노부인과 잠시 수다를 떨면서도 내일 차를 몰고 나갈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일은 타고 나가 볼까?

노부인의 숨소린지 코고는 소린지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릴 들으며 누워 있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계속 민경삼 생각만 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이리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이런 젠장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등을 돌려 잠을 청했다. 또 그렇게 생각하니 잠이 스르르 쏟아진다.

하지만 지난 4일간 고민했던 일이 그리 간단한 정리로 마무리 될 것은 아니었다.
꿈 속에서도 그 우라질 중늙은이가 나타났던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폐 창고에 안선생이 재갈이 물린 채로 묶여 있고 머리에 도깨비처럼 뿔이 난 민경삼이 둥그런 운전대만 뽑아 들고 마치 운전 하듯 빙빙 돌리며 묶여 있는 안선생에게 다가온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게 뭐가 무섭다고 안선생은 가위에 눌려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으악~”

소리에 놀라 노부인이 깨어 소란을 떨었다..

“뭐.. 뭔 일이여? 왜 그래유 당신?”

아직도 뿔이 난 민경삼이 그리 무서운지 안선생이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모습이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다.
노부인이 서둘러 손수건과 안선생의 손목 시계를 챙겨 마당으로 나오는데 안선생이 자동차 타이어를 두들기며 공기압 점검을 하고 있다.

“왜요? 차타고 나가실라우? 어디가 망가졌다문서요?”

“고쳤어! 까짓 것 뚝딱이지!”

“트렁크 보당이 어딧는 지도 모르는 양반이 고치기는?”

씰룩 대는 노부인의 모습이 자못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자신이 괜한 고민으로 며칠을 낭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안선생이다.

“뒤 안 봐줄꺼야?”

“언제는 봐준다고 소리지르시더니…. 오라이, 오라이!”


오랜만에 편하게 가는 출근길이다. 기분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가속기를 서서히 밟고 있는 안선생의 눈에 민경삼이 일하는 주유소의 네온 싸인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는 표정의 안선생이 주유소 안 쪽이 잘 보일 만 한 갓 길에 차를 세우고 유심히 주유소를 살펴 본다.

잘 안 보이는 지 안주머니에서 안경까지 꺼내 끼우고 유심히 지켜 보는데, 여기 저기 분주히 뛰어 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민경삼의 모습이 보였다. 예의 히딩크 어퍼컷 세레모니를 해 보는 안선생이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콜라 먹고 트림해서 쑥 내려 간 기분이었다. 안선생의 십팔번 김부자의 “무정한 철새”가 오랜만에 안선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빵빵~”

난데없는 클랙슨 소리에 기겁을 해 룸미러를 쳐다보는데…
그 웬수 같은 ‘영광 주유소’ 글짜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이런 옌장할~`”

민경삼은 물 만난 고기 같았다. 안선생의 옆으로 붙어 오랜만이라고 손짓을 하고 뒤로 가서 빵빵거리다 앞으로 나서 마치 군대 콘보이 차량 마냥 안선생의 차를 선도하더니 군가까지 부르고 자빠졌다. 안선생의 얼굴이 완전 걸레 씹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도저히 못 참겠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신문을 보고 있던 노부인이 씩씩거리며 내뱉은 안선생의 말에 돋보기 안경 너머로 안선생을 쳐다보며 물어본다.

“뭐라고요?”

“내 이 영감태기를 그냥~~ 에이~”

죄 없는 볼펜 깍지만 뻑뻑 빨아대는 안선생이다.

“왜 그래요 요즘? 이상해요 당신!”

“당신은 알 거 없어~”

노부인이 다시 씰룩 대는데 TV에서 광고 소리가 나와 안선생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엔진에 성능이 좋아진다고요!
한번 넣어보세요! 오리표 엔진 코팅제!”

TV 광고를 본 안선생이 주먹을 불끈 쥐곤 결전의 날을 암시하듯 이글거리는 눈망울로 한 마디 한 마디 정확히 씹어 대뇌였다.

“이 영감태기~ 좋아… 어디 두고 보자고 이 영감태기~”


이젠 전쟁이다. 안선생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할 만큼 당해 줬다. 먼저 걸어 온 전쟁이니 명분도 안선생이 앞선다. 왜 있잖은가? 일본이 진주만을 먼저 선공했어도 결국엔 미국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전쟁을 하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했다.

“여보~”

“에구 깜짝이야~”

“거… 저번에 애들 내려 왔을 때 지형이가 놓고 간 물안경 있지?
그거 좀 꺼내 와?”

“그건 뭐 할라구유?”

“어허~ 꺼내 오라면 꺼내 올 것이지 뭔 그리 말이 많아?
장군이 장도에 나서는 이 마당에~”

“ 뭔 소릴 하는 겨 이 냥반이?”

다시 아침이다. 안선생의 경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민경삼이 일하는 주유소로 들어 와 정차 한다. 안선생이 차에서 내린 후 민경삼이 있나 살펴보고는 없는 걸 확인하곤 큰소리로 말했다.

“어이, 거 엔진 힘 세진다는 거 하나 넣어주슈!”

민경삼이 안선생을 항상 기다리던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이번에는 안선생의 경차가 서 있다. 이제 거꾸로 안선생이 민경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좋다. 하려면 제대로 하는 거다. 이 영감태기가 왜 안 와? 하며 시계를 확인하려는 찰라 민경삼의 트럭이 싸이드 미러에 나타났다.

“흥~ 이 영감태기… 너 오늘 맛 좀 봐라”

안선생이 결의에 찬 눈빛을 하더니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머리띠를 질끈 묶곤 목에 걸려 있던 손주녀석의 물안경을 치켜 올려 단단히 쓴다.

오히려 놀란 건 민경삼이었다. 민경삼은 항상 기다리던 자신의 자리에 안선생의 차가 서 있자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천천히 안선생의 차를 앞질러 갔다.

그러자 안선생의 경차가 힘차게 출발해 따라붙고… 웬일 인가 싶은 표정의 민경삼의 옆으로 따라붙어 민경삼이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소리 지르고 손을 흔들고 민경삼 차 앞으로 뛰어 들기도 하고 난리를 친다.

민경삼은 잠시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자신도 소리지르며 이 기괴한 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두 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여 마음으로라도 서로 지지 않으려 안선생과 민경삼은 엄숙하게(?) 레이스에 임하고 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서로 손짓으로 인사하고 소리지르고 웃고 떠들며 이 황망한 레이스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기사 등록일: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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