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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6> 글 : 이호성 (캘거리, 소설가)
 
6

요즘 안선생은 온통 자동차 잡지만 쳐다보는 중이다. 출근 후 쉬는 시간만 생기면 연신 자동차 잡지를 꺼내 읽으며 열공을 할 정도였다. 오늘도 타이어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난다.

“그러니까 215에 55에 R17 이면 215타이어 폭에 그 폭의 55 퍼센트의
싸이드 월에.. 어? 들어 와요”

신참내기 영어 선생인 김선생이 들어온다.

“월례회의 준비 다 됐습니다.”

“알았네. 내 곧 가지. (김선생이 나가려는 데) 아 참, 김선생!”

“예?”

“김선생 차, 광폭타이어 맞지?”

“그런데요?”

“어때? 정말 코너링 할 때 효과가 좀 있나?”

“글쎄요. 아무래도 조금은 낫죠. 소음은 조금 더 나는 것 같지만
회전할 때 좀 덜 밀리는 느낌입니다. 근데 왜 그러시죠?”

“아, 아냐 그냥 좀…. “

“교장 선생님. 요즘 신나는 일 있으시죠?”

“뭐?”

“요사이 부쩍 웃으시고 저한테 야단도 덜 치시니 말입니다.”

“그래? 섭섭하면 옛날로 돌아가서 야단 좀 쳐보지 뭐!”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지금이 딱 좋습니다. 충성!”

김선생이 어울리지 않는 거수 경례까지 하고 나가자 싱겁긴~ 하며 안선생이 미소 짓는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변해 버렸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해 본다.

“내‥ 내가?”

분명 변한 건 사실이다. 그렇게 질색하던 민경삼과의 자동차 경주, 아니 경주라 하기엔 조금 그렇고 아침 조우 정도? 아무튼 그것을 스스럼없이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항상 먼저 나와 있는 사람도 안선생이다.

오늘도 손주 녀석의 물안경까지 목에 걸고 국도 갓길로 힘차게 행차하신 안선생인데 색다른 광경이 눈에 띄었다.

민경삼의 트럭이 갓 길에 세워져 있고 민경삼이 연신 자키를 돌리고 있지 않은가? 타이어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안선생이 민경삼 트럭 앞쪽 갓 길에 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렸다.

사실… 열흘이 넘게 아침에 맞닥뜨렸지만 실제로 차에서 내려서 말을 나눈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몇 번은 그래 보고도 싶었지만 학교 초입에 다다르면 항상 민경삼의 트럭은 우회 도로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민경삼에 대한 인간적인 궁금함도 조금은 있었다. 처음엔 짓궂은 장난에 심성도 고약할 거라 생각했는데 비록 차에서 차로 나눈 교감이었지만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슬며시 작업 중인 민경삼에게 다가가 불쑥 한마디 던지는 안선생이다.

“이봐! 영감태기! 정비불량은 기권패야!”

민경삼이 열심히 자키를 돌리다 놀라 안선생을 쳐다본다. 하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계속 자키를 돌린다. 약이 오른 건지 화가 난 건지 아무튼 심사가 꼬인 게 확실했다.

잠시 민경삼이 작업을 하는 걸 지켜보는데 손이 없어 뭉툭해진 왼손을 이용해 능숙하게 타이어 작업을 하는 모습에 안선생이 속으로 감탄을 했다. 그래도 뭔가 돕고 싶은데…

민경삼이 아무 말없이 터진 타이어의 휠넛을 풀어 빼내곤 스페어 타이어를 가지러 가려고 돌아서는데 안선생이 벌써 스패어 타이어를 가져와 타이어를 짚고 서 씨익~ 마치 승자는 나야~ 하는 미소를 짓고 서 있다. 민경삼이 그 모습을 보더니 노부인 퉁퉁 부운 입술 몬양 입을 쭉 내밀어 버린다. 이 친구 귀여운 구석이 있네? 하며 안선생이 스패어 타이어를 굴려 민경삼에게 보냈다.

“영감태기 이름이 뭐여?”

민경삼이 심사가 꼬인 게 정말 확실하다. 바퀴를 끼우며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름은 알아 뭐하누?”

이렇게 나오면 놀려 먹기 더 재미있어 진다.

“심술이 단단히 났구먼.
쯧... 오늘일은 없던 걸로 해 둠세! 그건 그렇고.
자네 술 먹을 줄 아는가?”

술이란 말에 휠넛 돌리는 것조차 멈추고 돌아보는 민경삼이다.

“술?”


서먹한 사이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술이다. 안선생은 전에 전출간 술 동무, 구선생과 자주 갔었던 해장국 집으로 민경삼을 데려 갔다.

조촐하게 술상이 차려지자 이젠 정말 오래된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도 아주 작달막한 친구가 내내 심술만 부리니 그것도 귀여워 보인다. 그러니 또 짓궂어 진다.


“오늘 내가 기권승한 기념으로 사는 거니까 입이 좀
쓰더라도 맛있게 들게!”

그러자 민경삼이 이번에는 지지 않을 거라는 듯 앞에 있는 소주잔을 입에 확 털어 넣어 버리곤 다시 한 잔을 따라서 다시 원샷을 해 버린다.

“커~ 술로는 나한테 안될걸?”

지지 않을 테다… 안선생도 똑같이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곤 머리에 확인, 붓기까지 해 보인다.

“크아~ 워뗘?”

크아~ 워뗘? 이래도? 를 몇 번 반복하니까 두 사람 술상 위에 벌써 소주 네 병이 비워져 있고 덩달아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술 한잔 하고 통성명도 하고 나니 이제 정말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두 사람이다.

“난 말이야! 그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휘젓고
다닌 사람이다 이거야!”

거나하게 취하자 민경삼이 예의 그 무용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이거 봐! 벌써 40년이 넘게 지난 일이야!
이젠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 영감태기야!”

“누가 그랴? 내가 이르케 팽팽히 살아있는데 누가 나를 잊어버려 누가?”

안선생이 이 대목에서 술잔을 들이킨다.

“임자. 그렇게 바둥거릴 필요 없어!
(시선을 돌리며) 늙으면 그저 잊혀지는 거여!
그냥 모래 위에 물 스며들 듯이 그렇게 사라지는 거라구!”

민경삼도 수긍하기 싫은 사실에 거푸 술을 마신다. 그리곤 몹시 심한 기침을 한다.

“쿨룩 쿨룩”

안선생이 놀라 민경삼의 등을 두드려 주며 안색을 살핀다.

“괜찮은 거야?”

민경삼은 안선생의 따듯한 온기가 담긴 손이 등에 닿자 오랜만에 느낀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얼마만인가? 이 느낌…

사실 민경삼은 무엇 하나 다 빠지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는 안선생이 너무 부러워 보였다. 사회적인 지위며 안정적인 직장, 단란한 가정 거기다 모두다 존경하는 그런 사람… 자신은 하나도 가지지 못 한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안선생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아침에 배달을 갔다 오던 중 우연히 만난 안선생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 같은 만남으로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안선생의 진심 어린 걱정의 눈빛을 보자 고마운 마음도 들고 왠지 이 사람에게는 이제껏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포근함도 느낄 수 있었다.

“딸이 하나 있어...
아들 놈들이야 제 밥벌이 잘하고 있지만,
딸 년하나 있는 건…”

여기까지 말한 민경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안선생…

“ 딸 년 하나 있는 건….미국에 있어.
애비 노릇도 못하고…. 그 딸년이 마음에 걸려”

민경삼의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 안선생도 괜히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여 들게. 영감태기 먹을 차례야!”

두 사람이 거나하게 취해 버렸다. 이젠 어깨동무까지 하고 길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에 희망이 무엇이냐~”

“뭐야 이 친구야… 노래 하면 김부자지…“그~ 리우면 왔다가 싫어지면 가버리는… 다~앙신의 이름은 무정한 철새~”


안선생은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학력, 격식 허울 뭐 이런 거 다 벗어 버리고 불알친구처럼 느껴지는 동년배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니 마치 오래 전에 보았던 클래식 영화를 다시 본 감동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되고 나선 안선생은 철저한 교장 선생이 되어야만 했다. 어디에도 안선생은 없었다. 항상 올바르고 존경받아야만 했고 엄숙하고 타의 모범이 되야 했다.

그 어디에도 원래 장난기 많은 안선생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었다. 거기다 지방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정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소원해지고 그렇게 틀에 박힌 교장 선생님으로만 살아왔던 것이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노부인과 누워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괜한 미소가 자꾸 만들어 진다. 그러다 보니 옆에 있는 노부인이 이상하게 볼까 잠시 머쓱해졌다.

“자?”

노부인의 퉁명스런 대답이 되돌아 왔다.

“자요”

안선생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냥 천청을 본 상태에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나, 오늘 행복해!”

“왜요? 월급 올려준답디까?”

“말하는 거 하고는… 나… 친구가 생겼어!”

퉁퉁거리는 건 노부인의 몫인가 보다.

“좋기도 하것수. 그 나이에…”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툴툴거리는 노부인의 잔소리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랴도 좋아!
친구도 있고 오래된 마누라도 있고 효자 노릇하는
자식놈들도 있구 말이여! 임자! 우리 말이여.
올 땐 따로 왔지만 갈 땐 같이 가자구.
누구 하나 쓸쓸히 혼자 남겨두지 말고 말여.”

노부인이 그제서야 등을 돌려 안선생과 마주하며 이야기한다.

“허! 이냥반이 술 한잔 먹더니 안 하던 소리 꺼정 허네!”

“그 친구가 혼자거든‥ 쓸쓸해 보여. 보기 안 좋아‥ “

노부인 그 소릴 듣고 반색하며 달겨든다.

“그람, 그 모습보고 생각이 바뀌셨수?
아, 오늘도 큰애헌테 전화가 와 가지고 으트케나… 오라고 난린지…”

안선생의 즐겁던 시간이 노부인의 한마디에 다 깨진 산통이 되어 버렸다.

“시끄러! 이건 잘 나가다가 그냥! (돌아누우며) 에잉~ 자!”

노부인도 특기를 발휘하며 지지 않았다.

“(입을 씰룩거리며) 으이, 술냄새~”



기사 등록일: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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