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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7>
 
7

민경삼이 머물고 있는 주유소의 쪽 방 한 켠에서 보글 보글 라면이 끓고 있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양은냄비, 그리고 김치 쪼가리 몇 개가 전부인 식사다.

민경삼이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한입 먹으려다 기침을 심하게 한다. 폐가 안 좋은 사람들이 뜨거운 김을 급하게 들여 마시면 기침을 하는 법인데 민경삼은 그 정도가 심하다. 숨 넘어 갈 듯 기침을 하던 민경삼이 겨우 진정을 하고 다시 젓가락을 드는데 유난히 두 개의 쇠 젓가락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새삼 자신이 살고 있는 방 안을 물끄러미 둘러보는 민경삼이다. 초라한 삶이다. 인생 마무리해야 하는 나이에 뒤돌아 회고할 것조차 마땅찮은 자신의 모습에 그냥 실소만 나왔다.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던 걸까?
언제 죽더라도 할 말없는 그의 지난한 삶이었다. 이렇게 살아 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안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선생을 생각하니 그나마 미소가 만들어졌다. 친구… 내 친구…

하지만 민경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안선생이 결코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선생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어찌 자신과 같은 쓰레기 인생과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하고도 정겹게 술을 마셔 준 안선생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다.

“교장 선생님하고 내가 친구? 허… 안 되지… 그람 안 뒤어..
무슨 염치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라면을 한 젓가락 들어 올리는데 쪽방문이 빠끔히 열리며 누군가 고개를 들이미는데 민경삼의 둘째 아들이었다. 몰골이 거의 노숙자 모습이다.

“꺽~ 어디 숨었나 했더니… 여기 계셨네?”

“대낮부텀 뭐 하는 겨 시방?”

“돈 좀 주쇼”

“없어 이눔아… 너 같은 놈은 있어도 못 줘..
줘 봤자 다 술 처먹어 제낄거 아녀?”

의외로 민경삼의 아들은 간단히 대답했다.

“뭐 그러시든지…”


오전타임을 마친 아르바이트 학생이 시계를 보며 동동거리는데 그 사이에도 계속 손님들이 밀어 닥친다.

“아~ 이 할아버지는 왜 안 나오는 거야?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네~~ 갑니다 가요…. 아 나 미치겠네….”

알바 학생은 잔뜩 골이 났다. 쪽방과 가까운 주유구에서 주유를 마치고 계산을 하자 마자 부리나케 쪽방으로 달려 갔다. 후딱 문을 열어 제끼며 짜증부터 낸다.

“할아버지 뭐 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심상치 않았다. 쪽방문으로 연결되는 간이 부엌에는 그릇들이 모두 헝클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

학생이 쪽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역시 도둑이 뭔가를 뒤진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안 모습이 보이는데 문이 다 열리자 엎질러진 라면 냄비 위로 쓰러져 있는 민경삼을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을 한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게 뭐야… 119…119~”


혹시 몰라 주유소에 당부해 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노인네 혼자 사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연락해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던 안선생이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병원을 향해 차를 모는데 가속기를 밟는 오른발이 덜덜 떨렸다.

안내 데스크에 질문을 해 병실 넘버를 알아 낸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가 내려오는 잠시 잠깐 사이, 학생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방 안이 난장판이 될 정도로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했는데 정작 민경삼은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했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6인실 병동의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 가자 마자 문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민경삼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 불편했던 왼손 팔뚝에 붕대가 감겨져 있고 얼굴에 멍자국도 몇 개 보인다.

“이 봐 영감태기~ 워치게 된 겨?”

민경삼을 만나게 되면 사투리를 더 쓰게 되는 안선생이다. 왠지 교장 선생이란 무거운 굴레를 잠시 내려 놓은 해방감의 표시라고나 할까?

“조금 데인 거이니… 걱정 마세유…”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며 민경삼의 상태를 이리 저리 살펴보는데… 근데… 방금 좀 이상하지 않았던가?

“그란디… 걱정 마세유?
영감태기 왜 말이 그리 늘어졌어? 또 장난하는 겨?”

그러자 민경삼이 이 아픈 와중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안선생이 놀라 소리 친다.

“여… 영감태기~ 뭐 하는 짓이여 시방?”

“교장 선생님~”

“뭐?”

“지금까지… 너무 죄송 했구먼유…
이제 그만 해야지유… 저 같은 눔이 어트케 교장 선생님하고…
어림도 없지유… 지가 술김에…”

“장난 치는 겨 시방?”

“아니예유… 지송허구먼유… 곱게 늙는 사람 보니께 샘도 나고 해서…
지송해유 교장 선상님..”

“그람? 나 가지고 논 겨?”

“아..아니예유”.

“아니긴 뭐가 아니여? 술 먹고 어깨동무허구 노래 부르고 다 뻥이여?
친구하자고 한 거 다 거짓말이여?”

“아… 아니여유… 아니유..”

“어허~ 끝에 꼬랑지 안 뗄껴?”

“아… 아니..여..”

“한번만 더 꼬랑지 붙이면 그 땐 증말 절단 낼 껴? 알았어?”

“고마워…”

“괜찮은 겨? 의사 말로는 상여 나갈 정도는 아니라 하든디..”

“괜찮여…”

“워치게 된 겨?”

민경삼은 그저 미소 지으며 고개만 저었다.. 안선생도 짐작 가는 것이 있어 더 이상 물러 보지 않고 그저 민경삼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후로 안선생이 바빠졌다. 혈혈단신 민경삼을 돌보느라 바쁘다 바빠…

“여보~ 임자~”

노부인은 바쁘게 뛰어 들어오는 안선생은 보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후다닥 뛰어나왔다.

“아~ 왜 그래유… 호떡집에 불 났시유?

안선생은 숨이 차다.

“헉..헉… 우…우선… 전복죽 좀 끓여.. 후딱.. 통장도 좀 내 놓고…

“뭔 일이데 시방?”

“아~ 후딱~”

안선생이 슈퍼맨처럼 날아 다닌다. 우선 주유소 가서 민경삼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직장을 잃는 것을 예방했고 종종걸음으로 뛰어 가 원무과에 병원비도 냈다.

“휴~ 다음은? 으이그 전복죽 차에 놔 두고 왔네…에이~”

안선생이 차에 놔뒀다던 전복죽을 챙겨 들고 병실로 들어서니까 민경삼이 환자복을 벗고 벌써 한쪽 팔을 사시사철 입고 있는 그 낡은 티셔츠에 끼워 넣으려 하고 있다. 기겁을 한 안선생이 튀어 가서 얼른 티셔츠를 빼앗아 버렸다.

민경삼은 병원비 때문에 일찍 퇴원하고 싶었는데 안선생이 민경삼의 사복을 종이 가방에 넣곤 압수해 버렸다. 난처해 진 건 민경삼이다.

안선생이 태권도 시늉까지 해 가며 위협을 가해 민경삼을 다시 침대에 앉혀 놓고선 가져온 노부인의 비장의 무기 전복죽을 꺼내 들었다. 민경삼은 물끄러미 바쁜 손놀림의 안선생을 바라보며 눈가를 적신다. 그러자 안선생이 호통을 치며 전복죽 한 숟가락을 민경삼의 입에 밀어 넣는다.

그렇게 무사히 민경삼이 퇴원을 했다. 아직 화상을 입은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더 입원해 있자는 안선생에게 사정 사정(?) 해서 퇴원을 했다.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답답한 병원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오늘도 예전의 민경삼처럼 밝게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주유를 하고 계산을 한다. 밝은 모습이 보기 좋지만 아직 회복이 덜 되었는지 민경삼이 잠시 벽에 기대에 숨을 몰아 쉰다. 그것도 잠시 다급하게 불러 제끼는 오전 알바 학생의 목소리에 부리나케 다시 뛰어 가는 민경삼이다.

얼추 오전 도우미 역할이 끝났다. 쪽방으로 돌아 온 민경삼이 휴대용 가스렌지를 꺼내고 냄비도 꺼냈다. 오늘 점심도 라면이다. 불을 받아오려 막 일어서려는데 안선생의 얼굴이 쪽방문 사이로 삐죽 튀어나왔다.

“영감태기?”

“아휴 깜짝이여…”

안선생이 장난스레 낄낄대며 방으로 들어오는데 그의 손에 큼지막한 비닐 봉지가 들려 있다.

“나 말이야! 영감태기 신세 좀 져야겠어!
내가 소꼬리탕을 좋아하는데 말이야. 우리 할멈은
냄새만 맡아도 젊은 애기 입덧하듯 헛구역질을 한단
말씀이야! 그래서 부득이 자네 신세 좀 져야겠네.
어디…. 파는 있는가?”

민경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안선생은 부지런히 신문지를 펴고 가져온 봉지에서 소꼬리 전골 냄비를 꺼내 식사 준비를 한다. 안선생이 자신을 위해 보양식을 해 왔다는 것을 느낀 민경삼이 고마운 마음에 또 마음이 짠해진다.

둘 만의 잔치 상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제일 신난 건 안선생이다.

“호~ 고놈 맛있게 생겼다.
영감태기 숟갈 들어~”

“자네도 어여 들어~”

“아, 내가 먹으려고 사온 건데 안 먹을라구?
내가 이거 다 먹을 껴…“

민경삼이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곤 이내 목이 매인다.

“고맙네… 병원비도 그렇고… 너무 고마워!”

“아~ 음식 놓고 고사 지낼 껴?”

버럭 소리지는 안선생이 작은 접시에 고기를 듬뿍 덜어서 민경삼에게 내민다. 민경삼이 접시를 받아 이내 호호 불어 가며 맛나게 먹자 안선생이 흐뭇한 표정으로 민경삼을 쳐다본다.

“영감태기! 내가 경주할 때 봐주는 거 알기나 알어?”

그러자 민경삼이 먹던 접시를 내려 놓고 금새 분위기를 바꾸어 말한다.

“아니 이 늙은이 과부집 문 걸어 잠그는 소리 할껴?
이래봬도 말이여! 월남전 때 말이여!”

“아, 침 튀어. 영감태기야!”

두 사람의 훈훈한 열기에 민경삼의 작은 쪽방 유리창이 뿌옇게 김이 서리어 갔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안선생이 골키퍼를 보고 있다. 말이 골키퍼지 소리 지르고 작전 지시하고 완전 감독이나 다름없다.
와중에 현관에서 영어 담당 김선생이 안선생의 휴대폰을 들고 뛰어나온다.

“교장 선생님 전화 왔습니다”

“어허~ 자넨 국가 대표 경기 중에 전화 바꿔 주는 거 봤는가?”

“급한 전화라고 해서요…”

안선생이 골키퍼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고 김선생에게 전화기를 가져오라고 손짓한다. 전화기를 받아 들었지만 시선은 아직도 축구공에 가 있다.

“여보세요 전화 바꾸었습니다… 아… 예? 예…“

순간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안선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침 상대편의 공격이 거의 골 문으로 다가오는데 심각해진 안선생은 축구공을 쳐다보지 못 한다.

“교장 선생님~ 왼쪽 왼쪽~~”

하지만 굳은 표정의 안선생은 예 예 소리만 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고 상대방 슛이 골 문을 통과해 들어 간다. 아이들이 달려와 헉헉거리며 말했다..

“뭐 하시는 거에요 교장 선생님?”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이미 끊어진 2G 폴더폰을 닫는 안선생이다.

“어… 어… 미안하다 얘들아… 미안…”

아이들이 다시 하프라인으로 몰려 나가자 안선생은 손에 든 폴더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정말이예요?”

노부인이 화들짝 놀라 안선생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안선생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랴~”

“언제… 언제 연락 온 겨여유?”

“낮에… 학교로 전화가 왔었어”

“그람 애들 집에서 출근해도 되겠네유?”

안선생이 대답대신 습관처럼 몸을 뒤지며 담배를 찾다가 볼펜깍지를 꺼내 입에 문다.

낮에 운동장에서 받은 전화가 바로 근무지 발령에 관한 전화였다. 전에 이야기 나오던 것이 결정이 되어 전화가 온 것이다. 서울과 인접한 근접 도시의 외진 초등학교였는데 서울에서 출퇴근해도 될 만한 거리였다.

“잘됐어요 여보!”

“그렇게도 좋아?”

“아 그람요! 그 동안 내, 말은 안했지만 앉으나 누우나 그 달걀 같은
손주 녀석들 얼굴이 아른거려서 눈물은 또 얼마나 찍어냈다구요.
그래, 언제 발령난다고 그럽디까?”

“곧 나겠지”

안선생은 민경삼과 헤어질 것이 마음에 걸려 마음이 무거웠는데 노부인의
뛸 듯 좋아하는 모습에 복잡한 심정이 교차하였다.


안선생의 이삿짐을 실은 소형 트럭이 국도에 접어 들었다. 뒤를 이어 안선생의 소형차와 큰 아들의 중형차가 뒤따른다. 소형차를 운전하던 안선생이 민경삼과 레이스(?)를 벌이던 그 국도에 접어들자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이내 클랙션을 울려 신호를 보내 이삿짐 트럭을 갓길에 주차시킨다.

어렵게 꺼낸 발령 소식이었는데 민경삼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 들였었다. 당연히 아들 집에서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이 좋은 거라며 축하 소리를 열 번도 넘게 했다. 미안하다는 소리에 별 말 다 한다, 자신도 서울에 자식들 있으니 보고 싶음 언제든 가서 보면 된다, 걱정 말고 편하게 올라가라 이야기해 줘서 그나마 안선생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었다.


“아버지 벌써 30분 째에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안선생은 민경삼이 나와 주리라 생각했다. 주유소 일이 바쁜 건가? 오늘 이사라 분명히 말해 줬는데… 서울이 가깝다지만 이사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만나기가 힘들어 질 텐데, 안선생은 꼭 민경삼의 얼굴을 보고 나서 서울로 올라 가고 싶었다.

“아버지… 막내하고 민성이네 모두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도 마을 초입 쪽을 쳐다보고 있던 안선생이 국도 쪽으로 나오는 파란 1톤 트럭을 발견하고 반색하지만 이내 민경삼의 1톤 트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곤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

한숨을 쉬며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는 안선생의 모습이 몹시도 안타깝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민경삼은 이미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안선생 일행이 서 있는 대각선 건너편의 마을버스 정류장 구조물 뒤에 숨어 안선생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선생이 연신 마을 초입 쪽을 살피며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에 민경삼이 눈물을 찍어 낸다.

“잘 가게 친구~ 잘 가~”


기사 등록일: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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