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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기사) 동포청,‘이달의 재외동포’ 첫 선정...김평진 前 재일제주개발협회장
작성자 운영팀     게시물번호 18787 작성일 2025-03-18 09:24 조회수 64

https://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1998

대한민국 발전·거주국 내 한인 위상 제고한 인물 발굴, 홍보
제주 관광개발의 선구자, 일본서 번 자본 고향 제주에 투자
관광·교육·사회 사업, 한-일 경제협력 강화 등에 기여

재외동포청이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 김평진 前 재일제주개발협회장을 선정했다. [재외동포청] 
재외동포청(청장 이상덕)은 대한민국 발전 및 거주국 내 한인 위상 제고에 기여한 동포를 발굴해 매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 발표한다고 3월17일 밝혔다.

첫 ‘이달의 재외동포’로는 모국과 제주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재일동포 기업인 김평진(1926~2007년) 전 재일제주개발협회장이 선정됐다.

재외동포청은 전 세계 동포단체의 추천과 언론, 교육, 경제 등 각 분야 민간 전문가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재외동포정책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달의 재외동포’를 최종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재외동포청은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 발표를 통해 광복 이전 독립운동 시기부터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경제, 문화, 사회, 과학 등 각 분야에서 모국과 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재외동포의 활동을 신문, 방송, SNS 등을 통해 홍보함으로써 국민에게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의 자산’임을 인식시킨다는 계획이다.

‘3월의 재외동포’로 선정된 김평진은 제주 출신으로 남다른 애향심으로 제주도 내 최초의 관광호텔을 건립하는 등 제주 관광 산업 발전에 기틀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64년, 제주도 최초의 현대식 관광호텔인 제주관광호텔(현재 하니크라운호텔)을 건립하면서 본격적인 관광 인프라 조성에 나섰다. 이후 서귀포관광호텔과 허니문하우스를 연이어 오픈하면서 제주도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제주도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호텔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투자는 제주 관광산업의 발전에 초석이 됐다.

교육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66년, 경영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제주여자학원을 인수해 여성 교육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그의 지원으로 제주여자학원은 제주 지역의 여성 인재를 양성하는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1981년 재일한국교육재단 고문으로 활동하며 재일동포 2세들이 모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역사와 국가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1977년 제주신문사(현재 제주일보) 회장으로 취임하며 신문사를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언론 기관으로 발전시키며, 제주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제주도의 언론 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일본에서 여러 기업을 운영하며 상당한 자본을 형성한 김 전 회장은 수익을 제주도의 관광산업과 교육사업, 사회사업 등에 투자했다. 1982년에는 재일한국인상공연합회 회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 간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 제주도의 감귤 산업 발전을 위해 신품종 감귤 묘목을 보급하고, 제주 농민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선진 농업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공헌을 높이 평가해 우리 정부는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한 바 있다.

이상덕 청장은 “재외동포는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해방 후 조국 근대화, IMF 외환위기 극복 등에 있어 막중한 역할을 했다”며, “이달의 재외동포 선정을 통해 그들의 공로를 널리 알려 모국과 동포사회 간 유대감을 높이고, 재외동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3월의 재외동포’ 김평진은...


김평진 前 재일제주개발협회장
1926년 4월 2일, 제주도 회천동에서 태어난 김평진은 1940년 15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친형의 사업을 도우며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20세가 되면서 그는 형의 곁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적은 자본으로 거리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행상을 시작했고, 이후 자전거와 리어카를 이용하면서 점차 장사 규모를 확장해 나갔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오사카의 비누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접 비누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비누는 큰 인기를 끌었고, 사업이 번창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평진은 이후 음식업으로 눈을 돌려 라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그의 가게는 빠르게 성장했고, 초밥집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다방을 개점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점포를 늘려 나갔다.

이 시기 그는 일본에서 큰 성장 가능성이 있는 파친코 산업에 주목하게 되었고, 1959년 김해철공소 등을 직접 경영하며 본격적인 사업 확장을 시도했다. 이후 1967년에는 도쿄도 타이토구 우에노에서 김해상사(주)를 설립하여 파친코, 레스토랑 등의 사업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김평진은 일본에서 기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후, 대한민국, 특히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하였다. 그의 기여는 크게 관광 산업, 교육 발전, 언론 발전, 사회 기부 활동의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제주 관광 산업 발전 기여

김평진은 1960년대 초반, 제주도를 방문한 후 관광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식했다. 당시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머물만한 현대적인 숙박시설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그는 1963년 사재를 투입하여 제주 최초의 현

대식 관광호텔인 ‘제주관광호텔’(現 하니크라운호텔)을 건립하였다. 이 호텔은 당시 건평 2,890㎡ 규모로 최신 시설을 갖추었으며, 제주도의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어 1964년에는 서귀포 허니문하우스(舊 파라다이스호텔)와 서귀포관광호텔을 차례로 건립하였다. 특히 허니문하우스는 제주도를 신혼여행의 명소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당시, 한국 내에서는 신혼여행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으며, 김평진의 호텔 건립은 제주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신혼여행지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그의 투자 덕분에 제주도에는 관광객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후 관광업이 제주도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제주 교육 발전 기여

김평진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66년, 경영난으로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제주여자학원(제주여자고등학교, 제주여자중학교)을 인수하였다. 당시 제주여자학원은 재정난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태였다.

김평진은 학교를 인수한 후, 학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사재를 투자하였다. 그는 학교 부지를 아라동으로 확장 이전하여, 당시 제주도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교육기관으로 만들었다. 또한, 교직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보다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제주여자학원은 제주 지역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수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하게 되었다. 김평진은 1995년까지 제주여자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교 발전을 지원했다. 현재는 그의 장남 이 학교 이사장직을 맡아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3. 제주 지역 언론 발전 공헌

1977년, 김평진은 제주신문사(現 제주일보)를 인수하여 제주 지역 언론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당시 제주도에는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언론 매체가 부족했으며, 지역 신문사의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김평진은 제주신문사의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신문사의 운영을 현대화하고, 기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며, 신문 제작 시설을 개선하였다. 그는 최신식 인쇄 설비를 도입하고, 신문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제주신문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제주도민들에게 신뢰받는 지역 언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그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공론화하고, 제주도 발전을 위한 정책 제언을 하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이는 제주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4. 모국 및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기부·공헌 활동

김평진은 기업 경영을 통해 얻은 수익을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환원하였다. 그는 제주도 곳곳에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교육, 공공시설, 스포츠 분야에서 아래와 같이 기부활동을 하였다.

- 제주도 개발 기금 및 감귤 산업 지원

그는 1963년 제주도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제주개발 기금 4,500만 엔을 기부하고, 감귤 산업 육성을 위해 감귤 묘목을 제주도에 보급하였다. 이는 제주도의 감귤 산업 발전에 기여하여 이후 제주 감귤이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성장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 공공시설 기부 및 인프라 개선

1965년에는 제주도청에 교환대 및 전화기 61대를 기부하여, 당시 낙후된 제주도의 행정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1972년에는 새마을 사업 성금 30만원을 기부하며 농촌 개발과 지역 발전을 지원했다.

- 체육 및 문화 지원

1984년,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개최될 때, 그는 2천만원의 기부금을 제공하여 제주애향운동장 건립을 지원하였다. 또한, 제주도 내 스포츠 및 문화 행사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부와 후원을 진행하였다.

- 월드컵 경기장 건립 지원

2001년, 대한민국이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제주도에도 월드컵 경기장이 건립되었다. 이때 김평진은 3백만원의 건립 기금을 기부하여 제주도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일조하였다.

우리 정부는 모국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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