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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병원님의 80년사 _ 이유식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 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통일이여 어소 오라/ 통일이여 오라/ 내가 안 병원님의 "음악으로 겨레를 울리다" 라는 479쪽의 회고록을 접한것은 8.15. 그날은 조국이 광복된 날이다 조국이 독립이 된 날로 61년을 맞이 하는 날에 님의 매제 권 승연님을 통해 이 회고록을 접하며 멀리서 이 촌사람 민초를 잊지 않고 유념해 주셨슴에 우선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어쨌던 우리민족 8천만 어느누가 님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의 노래를 모르랴 어느 누가 이 노래를 싫어 하랴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이 메아리만 치는 노래 때로는 하늘을 보고 껄껄 웃어도 보고 때로는 북녘 하늘 넘어다 보며 눈물 흘리며 불러 보는 이 노래. 이 노래 통일이여 어서 오라를 천번 만번 되뇌어 불러 보며 나는 이글을 쓴다 더 더욱 이 노래가 나의 심금을 울려 주고 있슴은 이 노래 한곡으로 남쪽에서만 부르는 우리의 애국가 북은 북쪽에서만 부르는 그들의 애국가가 있건만 이 노래는 남 북의 애국가가 되어 우리민족 누구나 애국가와 같이 부르는 노래 이기에 더 더욱 감명이 깊다. 나아가 이 노래를 작곡하여 민족의 희망과 비죤을 제시해 주고 하나 되는 일체감을 불러 이르켜 주는 우리 민족에게 빛과 소금의 양식을 뿌려 주시고 있는 님과 같이 캐나다에서 호흡하며 친교를 하고 있슴은 영광중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몇년전에 캐나다 20만 교민이 매년 선정하여 그 공로를 치하하는 한인 문화예술상 시상식이 토론토 한인 회관에서 있었다 님은 자작 cd 동요짐을 주시며 이 회장 아직 젊고 능력이 있으니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훌륭한 업적을 남겨 달라시던 말씀이 아직도 쟁쟁히 나의 귓전을 멤돈다 님이 91년도에 이상을 받았고 민초가 2003년에도에 이상을 받았으니 연륜으로 따지면 님이 지금 민초의 연령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님의 업적을 어찌다 필로 찬양을 하랴만 님은 우리 교민 사회의 보배 이시고 우리민족의 보배 이시며 세계 어느 누구나 숭앙 해야할 훌륭한 업적을 남기 셨다는 존경의 마음을 피력 하고 싶다. 이에 님의 양력을 간단히 소개 하면 1926년 서울서 출생, 서울 음대 졸업, 경기 여 중고 경복 중고 용산 중고 음악 교사및 숙명 여대 강사를 역임하셨다. 1945년 봉선화 동요회를 창단해 창작 동요를 보급하며 광복후 한국 동요 발전에 선구자적 역활을 하셨다. 1954년 한국 어린이 사절단 단장겸 지휘자로 미국 48개주 순회 공연을 펼쳐 조국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데 공헌을 하셨다. 1974년 캐나다로 이주 토론토,YMCA 합창단 천주교 성가대 지휘로 활동 하며 작곡집 우리의 소원과 CD 통일 기원 노래를 출반 하셨으며 현재는 한국 음악가 협회 회원 토론토 미술 작가협회 고문으로 계시며 화가로서 개인 유화전을 갖기도 하셨다. 이에 선생님의 업적을 기려 모국정부는 보관 문화 훈장을 수여 했고 그외 대한민국 동요대상 한국 음악상 한국 아동 음악상등 수 많은 상을 수상한봐 있다 만문만화의 선구자 석영 안 석주님은 님의 선친으로서 우리의 소원을 작사 하셨는데 우리의 소원을 작사하기 전 님의 선친은 님의 앙청에 의하여 1947년 3.1절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 이 목숨 바쳐서 독립/ 독립이여 오라/ 이 겨레 살리는 독립/ 이 나라 찾는데 독립/독립이여 어서 오라/ 독립이여 오라/ 라는 작사를 님의 아버지로 부터 받아 작곡을 했었는데 그때 시대 상황은 갓 독립을 한 조국이기에 어느누구나 독립된 조국 독립에 대한 감격과 독립 정부를 이루려는 열망등을 내포한 작사 독립이란 단어가 그후 통일로 바꾸어 지게 된다. 1950년 한국 전쟁이후 남 북의 양과 같은 민초들은 통일을 열망하며 이 노래를 열창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란 생각이다. 나아가 님의 선친과 님을 그리는 뜻에서 청강문화 산업대학 정 희경 이사장은 본 대학 본관 앞에 두분의 뜻을 높히 선양코자 우리의 소원 기념비를 제작 했는데 이는 온 겨레의 염원을 상징하는 기념비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에 한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의 동요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민초가 8월초 토론토 캐나다 한인 문인협회 호반 문학제 초청을 받고 참석을 했었는데 그때 내가 존경하는 문사 전 이화여대 교환 교수 이 동열 박사댁에서 일박을 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날밤 우리는 밤 가는 줄 모르고 한국동요 CD를 들으며 담론을 했었는데 현재 조국의 노 무현 정부는 자라나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고향의 봄 반달등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 하니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유인즉 홍 난파 작곡 작사인 이 두곡은 홍 난파가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친일 유산 청산의 일환이라 한다 김 구 선생님의 말씀은 그 시절에 조국에서 살아온 우리 동포 2천만이 친일 않한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형평을 가려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민초의 생각은 을사 5적이라든가 아니면 극악적으로 친일을 했는자를 재외 하고 어쩔수 없이 생존코자 친일을 했슴은 역사가 판단해서 처리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인촌과 춘원을 어찌 친일로 매도 하며 5천 역사의 배고품을 면게 해준 민족의 영웅 박 정희 대통령을 어찌 친일로 몰아 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왜 이럴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요 이야기가 친일 문제로 불거질까 싶어 여기서 줄이며 안 병원선생님의 80년의 인생회고록의 에필로그 중 일부를 소개하며 필을 놓을까 한다 님은 그의 에필로그에서 큰일 보다는 작은 일들을 즐기면서 살아온 내 생애를 돌이켜 보고 그동안 모아온 기록과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더 늦기 전에 회한의 심정으로 나의 80년을 정리해 보았다. 아버님이 남겨 주신 "우리의 소원"이 짧은 동요가 반세기를 넘어 우리민족의 바람을 대변해 주는 겨레의 노래로만 불리고 아직까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함이 안타까운 일이다 내 생전에 남북 통일이 되어 판문점에서 남북 어린이 들과 함께 남여 합창단이 모여 "우리의 소원"의 대합창을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흘러간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끝 구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흘러간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님의 겸허한 마음은 우리 민족 역사에 길이 길이 빛나리는 생각을 하며 지면상 좀더 상세히 독자님들에게 님의 훌륭한 업적을 알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독자분 중 님의 업적을 좀더 깊이 있게 숙독을 원하시는 분에게 님의 회고록을 대여 해 줄수 있음을 밝히며 끝을 맺는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9/1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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