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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의 퇴장. 글 : 김대식 기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이다. 요즘 말로는’쿨 하게 떠나라’고 해도 맞는지 모르겠다. 헤어짐과 떠남의 순간만큼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또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 떠날 때 박수 받은 한 청년이 있다.
지난 9월 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3회전에서 금년 36세의 안드레 애거시(Andre Agassi)는 독일의 세계 랭킹 112위 베커에게 3-1로 분패하며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그가 얻은 포인트는 대부분 상대의 실수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패배가 확정되고 눈물 범벅으로 일그러진 청년의 얼굴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새삼 그의 나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관중들은 떠나는 영웅에게 4분여 동안 기립박수로 아쉬움을 달래며 진한 사랑을 나타냈다. 개인 통산 8차례의 메이저대회 우승, 투어대회 단식 60회 우승에 빛나는 애거시였지만 세월의 무게는 그를 짓눌렀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팬 여러분의 사랑이 경기장에서 또 인생에서 나를 이끌었고 여러분이 내 인생 밑바닥의 순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인도했다”며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애거시는 역대 5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 업적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가 영웅시 되는 것은 단지 그의 업적만은 아니다. 1986년 프로로 데뷔해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세계랭킹 톱 10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서 그의 멀고도 험했던 대장정에 사람들의 갈채가 쏟아지고 있다.
때로는 순위 밖으로 추락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테니스 자체를 사랑한 그의 열정과 집념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 때의 명성에 자만하거나 군림하려 들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 탐욕이 아닌 순수한 열정, 바로 그것이 그를 아름답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이번 마지막 대회에서 씨드 배정도 받지 못한 그가 끝까지 선전해 우승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한 허리통증 등 쌓인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며 매 경기마다 진통제를 맞아가면서도, 최선을 다한 후 패배를 받아 들일 줄 아는 투혼이 오히려 그를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가 승리하던 순간 못지않게 그의 당당하고 장렬한 패배 역시 기억될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팬들과 함께 이별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It's saying goodbye, it's a necessary evil.”이라는 말로 작별의 마지막 순간을 운명처럼 받아 들였다. ‘사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 이라던 ‘러브 스토리’ 명대사에 결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36세의 그는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굿 바이, 애거시!

많이 동떨어진 스토리지만,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던 한 젊은이다. 흥행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으며 이미 무료영화는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1970년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 분신 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 전태일. 17세의 나이로 평화시장 피복공장 미싱사보조로 취직해 몇 년 후 근로기준법에 눈을 뜨게 된다.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그 환경과 처우에 대한 개선방안을 노동부에 정식 문제제기 하기도 했다. 이러한 돌출(?) 행동으로 해고를 당했지만, 1970년 9월 다시 재단사로 취직해 또 한번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 선처를 약속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정을 약속한 기한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는 동료들에게 "쓸모 없는 근로기준법을 화형 시키자"고 제의하며 시위를 계획한다. 그 해 11월 13일 피켓 시위 직전,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하게 되자 전태일은 분신을 감행했다. 화염에 휩싸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숨을 거두었었다. 그의 나이 스물 둘 이었다. 유신 발표, 긴급조치 발동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이 뒷받침된 고도의 경제발전, 그로 인한 빈부격차는 시대가 저지른 또 하나의 아픔이었다.
암울하고 거대한 시대의 실체에 붙잡히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한 청년의 개인적인 삶은 이 땅에 홀어미를 남기고 가야만 할 결단을 강요 받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청년은 잠 들었다.
잘 자요, 전태일!!

며칠 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는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지난 달 집회 도중 사망한 또 다른 노동자의 위패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범국민추모제는, 그 날 행사장 앞에서 반대 시위를 펼친 보수단체 회원들과의 충돌 우려로 한때 긴장감이 돌기도 했으나, 천 여명의 시민사회단체 회원 및 희생자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불상사 없이 마무리됐다는 짧은 사진기사가 정말 짧게 게재됐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미학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우리를 고기 국에 쌀밥 먹게 해줬다는 위대한 대통령이 있었다. 효자동 이발사 말마따나 참으로 오래 해먹으신 각하, 삭신 쑤시듯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말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고 좋아졌다. 언젠가부터 다시 그들이 뻔뻔스런 반격을 가하고 있다.
해괴망측한 주장들이 거침없이 제기 되고 있다. 누군가 만일, 야망에 불타며 허리에 긴 칼 차고 싶어했던 그 아름답던 청년이 천황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며 만주군관학교를 거친 일본군 육사출신 장교였다고, 권총차고 돌아 온 쿠데타 원조 유신본당이라고, 눈 멀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몰랐었다고 소리치고 싶다면 아마 또 다시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 온 듯 하다.
시월의 마지막은 아직 근 한 달이나 남았건만 캘거리엔 벌써 눈이다. 낙엽 지니 하늘은 더 커 보인다. 그의 망령이 꿈틀댄다.
제발 푹 자요, 다카키 마사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9/1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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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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