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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나무(25번째, 마지막회): 순진이 2005-12-29
 
1993년 8월

한국의 장마철 같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어쩐지 우울했다. 먹은 점심이 뿌듯한게 언칠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지? 아픈가?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국기 계양대에 걸린 카나다 국기가 애처러워 보였다. 색이 바랜데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은 금붕어의 꼬리처럼 끝이 반쪽으로 찢어져 있었다.
“짜식들 좀 제때 제때 바꾸지……!”
빗속에 흐느적거리는 카나다 국기가 마치 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알게 모르게 지쳐있는 나를 발견하고 혼자 한숨쉬는 일이 많았다.

큰 집으로 이사온 후로 넓직한 공간이 좋긴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큰 아들 진이도 고등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집Mortgage와 Tax가 엄청났다. 먼저 살던 집은 Pay off된 집이어서 Mortgage걱정이 없었다. 집이 작아서 Tax도 적었고 전기세 물세 Gas heating도 적었었다. 그런데 큰 집으로 이사온 후로는 모든 것이 두배로 늘어났다. 월급도 두배로 늘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아아들이 커가니까, 씀씀이가 예전같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는 Ski trip이며 수학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 기는 죽이기 싫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다 보니 하나가 아닌 세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아이들 하는 축구와 Hockey에 드는 비용은 또 다른 부담이었다. 생각다 못해 진이와 찬이의 Hockey를 그만두기로 했다. 아쉬웠지만 이젠 공부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냥 작은 집에서 살껄!”
집을 사고 남았던 여유자금도 이젠 바닥이 났다. 순진이에게는 말도 못하고 혼자하는 고민은 더 힘들었다.
‘순진이인들 오죽하랴!’ 모든 살림을 맡아서 하는 순진이는 주머니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알았다. 순진이는 요즘들어 부쩍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자기가 우겨서 큰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신통한 직장이 있을리 없었다. Graphic Art쪽의 직장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나이 40이 넘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Cashier나 공장에서 하는 막노동뿐이었다.

순진이는 한국에서 글을 못 읽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야간학교에서 가르친 경력이 있어서 토요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잡았다. 그리고 주중에는 Part-time으로 세탁소에서 일을 했다. 자기가 한 이야기가 있어서 찍소리 못하고 딴에는 애쓰고 있었다. 한글학교에서는 토요일에 세시간을 가르치고 시간당 25불을 받았다. 적은 보수가 아니였지만 세 시간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과준비를 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것도 학교라고 학기초에 영어로 Peel교육청에 매주마다 가르칠 교안을 작성해서 내야했다. 일주일 내내 머리 속은 온통 한글학교로 꽉 차 있었고 덩달아 나까지 학과준비에 동원되었다.

세탁소 Helper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었다. 옷을 받고 내주고, 시간을 내서 수선을 하고 일손이 모자라면 Shirt까지 대려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더욱이 여름철에 Shirt를 대리는 일은 마치 지옥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고 순진이는 표현했다. 기계에서 나오는 열과 Steam 때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고 했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순진이는 찍소리도 못했다. 모두 자기가 자청해서 저질러(?) 놓은 일이니……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일해야지……’
막 자리에서 일어설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Hallo~~”
“여보~ 나예용”
“… 웬일이야?”
“여보~~ 나~ Job 잡았다~앙~” 귀가 번쩍했다!
“뭐라구 했어?”
“나~ Job잡았다구~~”
“정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죽으라는 법은 없네~!’

“어디야? 무슨 일이야?”
“……”
“무슨 일이냐니까?”
“ㅎㅎㅎ 내가 너무 심했나?”
“………”
“C집사님이 휴가간다구 일주일간 세탁소를 봐달래~”
“야~~~~~~” 나도 모르게 악을 썼다.
“………”
“지금 사람 약올리는거야~~~?!”
“… 아~니~~ … 난 좀 웃으라고 한건데……”
“야~~ 그게 웃을 일이야~?” 난 계속 악을 쓰고 있었다. 순간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내가 바보스러웠다.
‘이~구~~ 시끼야~~!’

“그것두 Job이야~?!”
“그러~엄~ 일주일간 Full-time으로 일하는건데… ㅎㅎㅎ”
“집아쳐~! 끊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통이 부서져라 하고 놓았다.
‘시~앙 그것도 Job이라고…!’ 속은게 분했다!
‘꼬~올에 그것도 웃기는거라구……’
그리고 금방 후회를 했다! 순진이는 요즘 저기압인 남편을 생각해서 한번 웃자고 한 것이데, 그렇게 무안을 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다니……
‘미친척하고 좀 웃어줄껄… 맛장구 쳐줄껄…!’
‘에이~구~~ 못난 시끼~!’

같은 교회에 다니는 C집사는 시내 한 복판에서 혼자 세탁소 Depot를 하고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간 여름 휴가를 가면서 순진이에게 세탁소를 봐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탁소는 아침 7시에서 저녁 6시까지 열었다. 아침 7시에 문을 열려면 Mississauga에서 뻐스와 Subway를 타고 가서 열기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순진이는 친정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에서 일주일간 지낼거라고 했다.

“아~니 그럼 날더러 살림을 하란 말야~?”
“뭘 그래요? 일주일인데……”
“그만 둬~!”
“안돼! 벌써 한다고 했는데…”
“나랑 상의했어야지~!”
“내가 밑반찬 많이 해 놓을께……”

순진이는 그것도 Job이라고 들떠 있었고, 일요일 교회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장모님 댁에 데려다 주고 왔다. 일주일간의 홀애비 생활이 시작됐다. 진정코 “아내의 자리”가 이렇게 큰줄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아침은 적당히 Cereal과 우유로 때웠고 점심은 돈을 주고 사먹으라고 했다. 저녁은 어떻게 한다? 밑반찬은 만들어 놓고 갔지만 차리고 먹이고 치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순진이는 어떻게 이런 걸 매일 했지?’
‘어떻게 매일 점심을 쌌지? 하나 둘도 아니고 네개씩이나!’
‘Shopping은? 매끼마다 음식 만드는 일은?’
‘청소는? 여기다 빨래까지 하면……’
순진이는 Superwoman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도무지 일주일이 이렇게 힘드는데, 순진인 애 셋을 데리고 아니 넷(?)을 데리고 여지껏 이렇게 살았단 말이지! 순진이 한테 무지하게 미안했다! 그리고 순진이가 존경스러웠다! 위대해 보이기 까지 했다! 이래서 모성은 부성과 다르다고 하는구나!

드디어 기다리던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세탁소 Depot은 토요일에 문을 닫는다) 장모님 댁에 가서 순진이를 Pick up했다. 매일 전화로 통화를 했지만, 일주일만에 보는 순진이가 반가웠다.
“여보, 고생 많았지요?”
“솔직히 당신이 다시 보였어!”
“왜~?”
“몰라서 물어? 난 살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일주일간 시내에 있길 잘했네”
“이젠 시내에서 일하지 마~!”
“그래도 벌어야지… 하라면 또 할거야”
“No! No~! 그만 둬~! 내가 더 일할께”
“호호호 이번에 기압 단단히 들었네!”
“기압…? 그래 맞다! 맞어!”

힐끗 순진이의 옆 얼굴을 쳐다봤다.
‘에~구~ 이렇게 살겠다고 애쓰는 순진이를 난 툭라면 핀찬만 주었구나!’
순진이가 애처러워 보였다! 고마웠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가만이 순진이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왜 이래~! 운전이나 잘해요~”
“가만있어……”
순진이의 손이 따뜻했다.


꼬리글: 25회를 마지막으로 “오르기 힘든 나무”를 끝냅니다. 그 동안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힘내자: 짝짝짝!!!
수고 많으셨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전에는 저보고 팔자 좋다고 하더니 중요성을 알더라구요..
특히 캐나다에서는 도와줄사람도 없고 가족뿐인데 똘똘 뭉쳐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새해엔 복 많이 주세요..

어진이: 힘내자님, 감사해요. 올해엔 많이많이 행복하세요. 건강하시고요.

예쁜이: 끝내신다니..서운하네요. 다른글이 올라오겠지만 오르기 힘든 나무를 많이 사랑했어요.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사랑받는 어진이 님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어진이: 예쁜이님, 감사해요.
새해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신지...... 꼭 이루시길 빕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행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연재 끝..



기사 등록일: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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