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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민족적 자존심
1809년 10월14일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 항복을 하고 치욕적인 조건의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다. 오스트리아가 항복하기 2일 전 18세의 학생이 나폴레옹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당대의 영웅답게 나폴레옹은 그 학생을 만났다.

'자네는 왜 나를 죽이려 했는가?'
'당신이 조국 오스트리아를 불행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켰는가?'
'당신을 죽이면 조국과 유럽에 최고의 기쁨이 된다는 신념이 시켰습니다.'
'용서해 준다면 고맙게 생각하겠는가?'
'당신을 죽일 기회가 한번 더 생기는 것 입니다.'

이 일이 있기 2년 전 1807년 나폴레옹은 스페인 정복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정복은 실패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러시아 전쟁 실패가 직접적 원인이 되었지만 스페인 정복 실패에서 나폴레옹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스페인의 항전은 처절했다. 특히 사라고사를 점령하기 위해 나폴레옹군은 2개월 동안 포위하고 5만명을 살육해야만 했다. 수도 마드리드도 피로 물들었다.

나폴레옹은 칙령을 발표하여 봉건제도 폐지, 종교재판 폐지, 국내관세 폐지 및 나폴레옹 법전의 시행을 약속하면서 무장해제를 유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스페인의 항전은 나폴레옹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봉건제도에서 해방 시켜주고 인민이 역사의 주인이 되는 공화국 만들어주고 인권선언에 입각한 법을 만들어 준다는데 싫다니.
그러나 좋은 제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법률제정이 문제가 아니라 나폴레옹이라는 외세에게 지배를 받는 다는 것이 스페인 국민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자 수치였다.
나폴레옹 군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스페인 민중의 게릴리식 해방운동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나폴레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오스트리아 청년이 테러리스트나 암살자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영웅 대접을 받는 것도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수호하려는 열정과 자존을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 때문이다.

정복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군사력도 아니고 첨단무기도 아니고 막강한 경제력도 아니고 피정복국의 민족의식, 민족적 자존심이다.

일전에 김관진 국방장관 면전에서 중국 총참모장이 미국을 맹비난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국방장관과 격이 다른 총참모장이 장관 앞에서 한국의 우방인 미국을 비난 한 것은 대국 소국을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이 주변국가 상대하는 것을 보면 월남, 북한, 남한 모두 다르다. 남한은 만만하고 물렁물렁하게 여긴다. 그러나 북한이나 월남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주권수호 의지와 민족의 자존 문제가 걸려있다.

북한은 잘 알다시피 중국의 경제원조가 없으면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 경제원조에 공화국의 운명이 달려 있는대도 북한은 중국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개혁과 개방을 요구해도 “공화국 식대로”하겠으니 간섭하지 말라고 버틴다.

중국이 북한을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것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동류의식 때문이 아니다. 중국경제를 보면 이미 사회주의는 오래 전에 포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
딴 주머니를 여러개 차고 있는 믿을 수 없는 나라, 중국에 의지하기 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라는 기본인식을 갖고 있다.

북한은 주권수호에 관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다. “우리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었다. 한국전쟁(6.25동란)은 북한 지도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할 부분이지만 온갖 고난을 겪으며 만주에서 항일무장독립 운동을 하면서 주권수호의지, 독립의지를 보여준 것도 대부분 북한의 혁명1세대다.

월남도 중국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나라다. 월남은 대불 항전, 대미항전으로 외세에 줄기차게 저항했고 세계최강의 미국에게 패배를 안겨 줌으로 주권수호의지,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이것은 공산주의, 자본주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독립과 자존에 관한 문제다.

월남은 중국과 남지나해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중이다. 해저 원유탐사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인데 월남은 문제의 지역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하고 총 동원령을 내렸다. 국가주석을 지낸 레드억 아잉은 “국가 최우선 과제는 주권수호다. 중국의 위협에 물러서지 말라.”고 국민들을 독려했다. 주권수호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한 판 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월남은 중국을 상대로 1979년 국지전을 치뤘다. 5개사단 10만 병력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월남 국경을 넘었다 17일간 전투에서 2만명의 전사자를 기록하고 소득없이 후퇴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과 장비를 보유하고도 중국을 졸전을 거듭했다.

더구나 월남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가 인민 해방군을 상대했는데 인민을 해방 시키기는커녕 월남 민병대에게 망신만 당하고 물러섰다. 그 전쟁에 중국군 곤명군구 소속으로 참전했던 진자수 박사는 “우리는 전쟁의지에서 그들(월남)을 이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월남, 북한과 다르다. 일본이라는 외세배격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못 받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축복이라고 하는 사람들, 일본천황에 충성 맹세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35년간 일본에 국토가 유린, 수탈 당하고 민족이 억압당한 것을 3억불에 간단히 해결 하는 것이 우리이고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일본의 성노예로 혹사 당한 것은 말도 못 꺼내는 것이 우리다.

그런가 하면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이라면서 전시작전권을 맡아 달라고 미국에 애걸복걸하는 것이 우리다. 잘 살게만 해준다면 즉 경제적 풍요만 보장된다면 독재도 좋고 식민지도 좋다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다. 그런 천박한 사고방식을 갖고서도 이웃 나라가 대접 해 주기를 원하는가?

드골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에 협력했던 반역자를 혹독하게 처단하면서 “프랑스가 외세의 침략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는 반역자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이라는 외세에 협력했던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는 커녕 그들이 사회 주류세력이 되었다.

우리가 이웃국가들에게 특히 중국에게 당당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주권수호의지, 국가 존엄성 유지 차원에서라도 과거사 정리를 좀 더 철저히 해야한다. 서양 속담에 God’s mill grind slow but sure 라고 했다. 천천히 할지라도 분명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국격이 유지되는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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