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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제노동절(May Day)을 맞으며
 
5월1일은 국제노동절(May Day)로 전 세계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고 안정된 생활을 이루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노동절의 시작은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이 근로시간 8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총 파업을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지금 하루 8시간 일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아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8시간 노동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배 노동자들이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바쳤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렸고 희생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루 8시간 노동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기업주들이 선심 쓰듯 그냥 준 것이 아니라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생산수단을 보유한 기업주들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며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기업주, 자본가들은 “작은 정부”의 “자유방임”속에서 이윤 극대화를 위한 “노동 유연화”의 자유를 누렸다. 성인남자는 물론이고 미성년자, 여자, 임산부를 막론하고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12시간-16시간 노동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다.
초기 자본주의 긍정적 면은 유럽의 경제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 면은 극심한 빈부격차 와 물질주의 만연을 들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사회현상을 분석해 자본의 집중과 빈부격차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시작으로 뉴톤 물리학의 작용(Action 자본주의 시작) 반작용(Reaction 사회주의 출현) 자연법칙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부의 “자유 방임”속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휴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는 일이 계속되자 곳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을 쉽게 피로하게 만들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하였으며, 누적된 피로는 집중과 긴장도를 떨어뜨려 노동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한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에너지(노동력)를 회복하지도 못한 채 계속 노동해야 했으므로 신체 노화가 빠르게 이루어져, 당시 노동자들은 40세가 넘으면 이미 노인 취급을 받았고, 그만큼 평균 수명도 짧았다.
그리고 장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오로지 일과 잠 자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문화생활 사회활동을 못해 정신적 황폐에 노출되어 지적으로 퇴보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로버트오웬 같은 사람은 노동시간 제한을 생각했다. 로버트오웬은 산업혁명 때 성공한 기업인으로 방직공장을 세워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또한 영국 최초의 사회주의자로서 “8시간 노동-8시간 재충전-8시간 휴식”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로 기업인 답지 않게 협동조합을 만드는 둥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해 일을 많이 했다. 그는 퓨리에, 생시몽과 함께 3대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불린다.
그러나 8시간 노동 쟁취는 장기간 투쟁의 결과이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은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진행했다. 막스는 18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인터내셔날(국제 노동자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결 조건은 노동일(노동시간)의 제한이며, 그것이 결여되었을 경우에는 개선과 해방을 향한 그 이상의 모든 노력들도 유산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 즉 각국민의 다수의 건강과 육체적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 그들에게 지적 발전과 사교와 사회적 및 정치적 활동 등의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8시간 노동쟁취는 전세계 노동자들의 공통된 목표가 되였다. 마침 영국 노동자들이 10시간 노동 쟁취에서 이겼다는 소식에 미국 노동자들은 고무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펴져나갔다. 호주에서도 낭보가 들려왔다. 건설 노동자들이 앞장 선 투쟁에서 숙련공(skilled worker)에 국한된 것이지만 호주 노동자들도 8시간 노동시간 확보에 성공했다. 이것은 호주 노동자들의 역량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86년 5월1일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총파업이 성공한 것은 노동자들의 가열찬 투쟁의 결과였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경찰, 구사대, 군인들까지 동원해 반격을 가했다. 5월3일까지 진행된 총파업 시위에서 어린 소녀를 비롯해 6명이 죽고 수 십 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노동자들 30만명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때 폭탄이 터져 경찰 7명이 즉사했다. 흥분한 경찰들은 비무장 노동자들을 향해 마구 총격을 가해 200명이 죽거나 다쳤다. 시위 주동자 8명은 폭동교사와 살인혐의로 사형이 언도 되었다. 4명은 처형되고 1명은 처형 직전 자살했고 3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7년 후 폭탄투척 사건의 진실은 기업주들이 꾸민 공작으로 밝혀졌다. 종신형 받은 3명은 무죄로 석방되어 사면되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 이것을 미국판인혁당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프랑스혁명 100주년에 출범한 제2인터내셔날은 미국 노동자들의 영웅적 투쟁을 기리기 위해 5월1일을 노동절로 선포했다. 마침내 1890년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한 메이데이 총 파업투쟁에서 미국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시간을 쟁취했다.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유럽과 미국, 호주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결과가 마침내 세계적 표준이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곧 러시아 혁명이다. 1차대전 중에 일어난 러시아혁명(1917년 2월)으로 소비에트 노동자 정권이 성립되었다.
“기업의 노동시간은 하루에 8시간을 넘거나 1주일에 48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 안에는 기계의 청소와 작업장소의 정돈에 필요한 시간도 포함된다. 18세 미만인 자의 노동시간은 하루에 6시간을 넘을 수 없다.”
자본가들이나 의회를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세운 소비에트 정권이 실시한 법령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어떤 유보조항 없이 즉각 소비에트 연방에서 실시되었다. 1차대전 이후 조직된 국제연맹(UN의 전신) 내에 국제노동기구(ILO)가 조직되어 8시간 노동을 국제규약으로 삼아 전세계 8시간 노동의 표준이 된지 100년이 가까워 온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전후 처리로 모인 파리강화조약에서도 노동문제가 대두되었는데 급격한 사회주의 운동을 막기 위해서는 8시간 노동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니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 되었다.
동구권 사회주의 정권들이 몰락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 20년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몰락한 구시대의 산물로 생각하고 사회주의 이념 대신 다른 가치를 찾아 갔다. 그러나 8시간 노동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사회주의는 인류의 역사 속으로 녹아 들어 가 역사발전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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