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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11>
 
11

거리에 낙엽이 날리더니 어느새 눈이 내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거리는 북적대는 인파로 넘실거렸다.

안선생의 가족도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백화점 나들이를 나왔다.
백화점 안은 온통 크리스마스 캐롤과 그 흥겨움으로 가득 차 있다.
노부인은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호사에 모든 매장을 다 들를 기세다.
지루한 표정의 안선생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대충 사!”

“참견 마시우!”

“백화점 물건 다 살라구 그려?”

“다 살 돈이나 줘 보고 잔소리 하시우”

말로선 노부인을 이길 재간이 없는 안선생이다. 체념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쇼핑하고 있는 또 다른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안선생은 민경삼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경삼과 헤어 진 후 보호 시설을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민경삼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안선생이 백방으로 민경삼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마치 일부러 꼭꼭 숨어 버린 사람처럼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미어 터질 듯 붐비는 백화점 안에 있는 안선생이었지만 그는 마치 망가진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민경삼은 안선생의 예측처럼 안선생에게서 벗어나 꽁꽁 숨어 버렸다. 갈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안선생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분리 수거장에서 거지꼴을 한 민경삼이 박스를 모으고 있다. 그나마 박스를 모아야 단팥빵이라도 하나 사 먹을 수 있기에 안간힘을 다 해 몸을 움직여보지만 이미 그의 몸은 그의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손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려 박스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다시 예의 그 지독한 기침이 엄습하고… 겨우 기침을 마친 민경삼이 이제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알아 차리고 그것이 언제 일지 그저 기다릴 뿐이다.

야속하게도 겨울비가 내린다.
민경삼이 박스가 비에 젖어 무거워질까 봐 얼른 노끈으로 묶어 들고 가까운 공중전화 박스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요즘은 모두가 핸드폰을 써서 그나마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있는 유일한 공중전화 부스였다. 잠시 비에 젖은 몸을 털어 내던 민경삼이 고개를 돌려 공중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일 죽는다 해도 이상 할 것 없는 그의 삶이었다.
그 전에…
그 전에…

민경삼이 뭔가를 결심한 듯 공중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집어넣는다. 대기음이 들리고 민경삼의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려 하는데..
이내 민경삼은 전화 걸기를 포기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반환되어 떨어진 백 원 짜리 동전을 꺼내 주머니에 넣고 돌아 서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비가 그쳤네… 비가..”

철거촌의 부서진 움막이 민경삼의 사는 곳이었다. 민경삼이 빵과 우유를 들고 엉성하게 박스로 여기저기 막아 만든 움막 안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도 그래도 살아 있으니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고 삼켜야 한다.

빵을 뜯는 손이 너무 떨려서 잘 뜯지 못 한다. 겨우 뜯어 한 조각 빵을 입에 넣곤 우유를 마시려는데 떨리는 손 때문에 우유가 흘러나와 소매를 적신다.
그나마 사래가 들었는지 그 지옥 같은 기침이 시작되어 그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이 거지 같은 움막 속을 가득 채웠다.



온 식구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있고 안선생은 방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다. 안선생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도 이런 행복을 나 혼자 즐기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경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심한 사람… 한숨을 쉬어 보는데 전화벨 소리가 그의 상념을 멈추게 했다.

“아, 전화 안 받을꺼야?”

전화기는 울리는데 노부인은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문 모르슈? 영감이 좀 받아요!”

요즘 노부인의 반항이 거세다. 안선생은 언젠가 버르장머리를 한번 고쳐 놔야지 하면서 귀찮은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에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

“나‥ 날세!”

민경삼이었다. 민경삼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기 선반을 붙들고 겨우 서 있었다. 귀에 대고 있는 수화기도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제대로 귀에 붙어 있지 못 했다. 안선생이 놀라 다급히 되물었다.

“영감태기?”

민경삼은 목이 매어 그렇게 부르고 싶던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야… 친구… 친구…”


민경삼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연신 설렁탕을 먹고 있고 그 모습을
안선생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손이 너무 떨어 계속 음식을 흘리자 안선생이 휴지를 꺼내 민경삼의 입가를 닦아준다.
민경삼은 호흡도 곤란한지 숨을 헐떡인다. 결국 안선생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간곡하지만 부드럽게)
이 사람아! 왜 나를 섭섭하게 하나!”

“아닐세 아니야!”

“몸은 괜찮은거야?”

민경삼은 대답 대신 추억에 젖는다.

“자네 옛날에 한 말 기억하는가?”

“무슨 말?”

“늙어지면 모래에 물 스며들 듯 사라지는 거라고‥ “

안선생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민경삼의 담담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정말 힘들고 고된 인생이었어…
나도 말이야…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잘 난 사람으로 태어나보고 싶다.. “

안선생이 감정에 복받쳐 소리 질렀다.

“사라지긴 누가 사라져! 뭐가 다음 생이야?
(민경삼의 손목을 쥐어 잡으며) 일어나!”

민경삼이 놀라 안선생을 쳐다보았다.

“왜‥ 왜이러는가?”

안선생이 다소 거칠게 민경삼의 손을 잡아 끌어 밖으로 나간다.

“글세 따라오라니까!”



기사 등록일: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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