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지은 죄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죄 가운데 태어나고 그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의 종인 인간의 기본값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가지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뤄주시는 것입니다. 죄는 마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없어지려면, 그 대가가 갚아져
야 합니다. 조건은 이렇습니다. 죄 없는 희생물이 그 죄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두가지 속성에서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이 두가지 속성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희생물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께서 스스로 대가가 되어주시는 길이었습니다. 스스로 피를 흘리는 방법외에는 공의와 사랑을 모두 충족시킬수
없었기에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그분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제시하신 진정한 화해헌물이십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녀가 되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정죄인 지옥에 가지 않게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책입니다. 인간이 자기 관점대로 난도질할만한 책이 아닙니다.
부디 예수님을 선택하는 길로 걸어 가시길 바랍니다.
걱정되시면 그냥 조용히 맘속으로 기도나 해주시던가요.
아래 늘봄님의 글은 거슬리지 않으신가요?
저도 자유게시판에서 종교적 야기들 거론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평행사상으로 끝이 안나는 것이지요.
바른 신앙적. 전통적인 관점에서 연재글을 올려주시지요.
모든 독자들이 자유주의자의 글과 전통신앙주의의 글을 비교 습득해볼 수 있게요.꾸벅~
본문을 얼핏 보니 무슨 대출사기를 했다는 말 같은데, 설명을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뜬금없이 다 지옥에 가니 어쩌니 하시니 불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
이런 식의 제목이 이 글을 읽는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오만한것인지,
상처를 주는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예수께서 이 제목을 좋아하실까요? 저는 단연코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공갈 협박도 이런 공갈 협박이 어디 있겠어요. 거부하면 지옥이라니.
결국 본질적으로는 거부하면 죽인다는 얘기잖습니까 지옥은 죽음의 상징이니까요.
지금이 믿는다 하면 살려주고 주저하면 목을 따던 야만의 시대도 아닌데 말입니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천국 티킷을 사지 않으면 모두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 하며
선한 사람들을 공갈협박해서 돈을 갈취했던 그 사악한 사제들과 뭐가 다를까요.
이런 제목은 믿지 않는 한사람이라도 더 예수를 믿게하기는 커녕 믿는 사람들 조차도
고개 절레절레 흔들게하는 그런 반 지성적이며 비인간적이고
반 교회적이며 반 예수적인 것입니다. 정녕 그걸 모르시겠습니까?
"예수를 거부하는 분들."
이 때 예수는 역사적 예수 그 분이 아니라 현실 교회의 예수를 말하겠죠.
이런 제목과 내용은 교회 안에서나 신도들 장악하기 위해 쓰는 전략입니다.
제 생각엔 글을 쓰신 분은 일반 독자들에게 사과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종교자연주의가 뭔지, 예수 세미나의 과거와 현재가 뭔지, 본회퍼의 기독교의 비종교화가 뭔지,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의 핵심이 뭔지, 폴 틸리히의 상징론이 뭔지, 불트만이 탈신화화의 공헌이 뭔지 등등 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을 텐테 이렇게 10년을 근본주의와 싸우고 있으니 말씀이죠.
아무리 그들이 못나도 질문은 개떡같이 해도 답변은 질문을 재해석해주고 찰떡 같이 하면 되는데 늘 선언만 하시는지 말씀이죠. 본인이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신학생이면 신학도 답게 친절하게 설명하면 될 일입니다. "나와 다름"으로 다가오는 타자는 늘 악마가 되는 법입니다.
선언적인 글은 추종자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바 분석적 비평적 글은 되지 못합니다. polemical arguments는 적을 처단할 수 있지만 설명과이해로 이르지는 못합니다. 책 한 줄을 인용해도 저자의 의도를 왜곡시키지 않았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교회 다니고, 일요일에 예배 드려야 하고, 예수가 초자연적인 하느님인 것을 믿고, 성서를 매일 읽고 암송하고, 하늘 위의 하느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느님이 만사형통을 보장하는 것을 믿고, 십일조 꼬박꼬박 바치고,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하느님이 바이러스를 막어 준다고 확신해야 하고, 등등이 예수님을 쫓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쫓는 데에는 이기적이고 부족적인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합니다. 우선 내가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행 티켓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21세기 우주진화세계관에서 종교가 말하는 지옥과 천당은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적도 없습니다. 사실상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습니다. 이런 만들어진 상업적 믿음은 예수 당사에 성전종교가 횡포를 부리던 유치한 행태입니다. 예수는 이런 믿음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분노했습니다
정말 예수를 쫓으려면, 만들어진 예수 말고, 참 사람 예수-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따라서 예수가 산 것처럼 이기적이거나 부족적이지 않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예수를 쫓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맹목적으로 목사의 말만 믿고 목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탈입니다.
하나님이 한번도 서기 1년 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의 힘을 발휘한적이 지난 2100년간 한번도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자주 힘을 발휘하시드니 지난 2100 여년간 하나님이 한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물리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전쟁을 막아낼 힘도 없었고 코비드를 막아 낼 힘도 없었고 가라 않는 배에 가득 탄 어린 학생을 구할 힘도 보여주지를 못하였습니다. 지난 2100년간 하나님이 한번이라도 힘을 발휘한 사실이 있어면 열거하여 보세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지요.
교회 다니는 것은 그런 거짓을 믿는 척하거나 속아 넘어가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은 일회적입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유신론적 종교가 해소할 수 없습니다. 특히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는 영생은 새빨간 거짓이고 상업적인 속임수입니다.
영원히 살겠다는 헛된 욕심을 내려 놓으면 자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