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먹기 좋은 도시
알버타주에서라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도 스테이크에 실패하는 일은 없다.
Keg 같은 체인점 추천..
보스턴피자에서 파는 15 불 짜리 스테이크도 가격에 비하면 훌륭하다.
오늘은 좀 색다른 스테이크,,
자주 가는 일본식당 '교토'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알버타산 소 Striploin 부위를 사용한다.
구운 정도는 Medium Rare.
포크로 눌렀을 때 피가 적당히 배어나오는 요리법을 선호한다.
고기 크기가 좀 작다는 점,
미소겨자소스를 발라 먹는다는 점이 일반 스테이크 하우스와 다르다.
시장냉면 vs 명가냉면
남대문시장 안에는 60 년 넘게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냉면맛집이 있다.
이 냉면집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작고 허름할 뿐 아니라, 시장통 한복판에 있어 간판을 발견하기조차 어렵다.
2 층 식당입구에 들어서면 빈대떡 지지는 라드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오이무침과 돼지고기 고명을 넣은 것이 이 집 냉면의 색다른 점이다.
돼지고기가 찬 육수와 어울릴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가격은 평양냉면 명가들의 절반수준 이다.
평양냉면 명가들이란 우래옥, 한일관, 을밀대, 남포면옥, 을지면옥 등을 말한다.
(한일관 창업주 손녀따님이 지난 가을 개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었지만 조의를......)
명가 냉면과 남대문시장 냉면 중 어디가 더 맛있었느냐 하면,,,
남대문 시장 냉면에 다른 특색이 있지만 솔직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다만 이 집에 두 번 이상 가게되면 은근히 중독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했다.
대한민국에서 함흥냉면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난 집에서 만드는 냉면은 이렇게 생겼다.
면발의 쫄깃함을 만들어주는 고구마전분 때문에 색깔은 은은한 잿빛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일지라도, 이 집 냉면이 명품냉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25 년 전 쯤엔가,, ,
한국에 여행와서 이 집을 찾았을 때는 식당 안팍에 조화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때 창업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조화에 적힌 이름들을 봤다.
대한민국에서 알만한,,
좋은 분 나쁜 놈 이상한 인간 총망라되어 있는 걸 보면서.
인성의 품격은 천차만별이어도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냉면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따라 내가 이 집에 처음 간 것은 다섯 살 때 였다.
내가 성인이 된 후 직접 데리고 가서 이 집 단골이 된 사람이 백 명 쯤이라고 치면,
세월이 지난 지금쯤 그 백 명이 가지를 쳐서 이 집 단골이 된 사람은 적게 잡아도 만 명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낮 11 시부터 2 시 사이에 가면 많이 기다릴 수 있다.
스프링롤+간장? No No
스피링롤+늑맘소스 Yes Yes
스프링롤은 버미첼리와 잘 어울린다.
버미첼리는 베트남식 불고기 고명과 땅콩가루, 양상치를 올리고 늑맘소스에 비벼서 먹는 쌀국수다.
딤섬집에 가면 스프링롤이 딤섬 메뉴로 나오기도 하는데, 베트남 식당과는 달리 넉맘소스대신 간장을 준다.
중국 수퍼스토어 T&T 푸드코트에서 방금 구워낸 유타오와 따끈따끈한 더우장은 아침식사용 이다.
여기에 Congee (쌀죽)을 추가로 시키면 중국식 아침식사 메뉴가 완성된다.
유타오는 겉의 바삭함과 부드럽고 쫄깃한 속살의 조화가 맛의 포인트다.
덴푸라 중 한 조각을 골라 우동에 넣으면 덴푸라가 풀어지면서 국물맛이 깊어진다.
고구마 덴푸라를 국물 맛내기용으로 잘못 넣고 아까워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키 한 개, 우동 한 젓가락, 덴푸라 한 조각, 초밥, 생강절임 한 조각, 우동국물 한 스푼, 사시미 한 점
양이 많아 보여도, 이런 순서로 번갈아가며 먹다보면 나처럼 소식을 하는 사람도 다 먹을 수 있다.
초밥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먹는다.
젓가락은 초밥 위에 와사비 얹을때만 사용한다.
짜장면 처음 먹던 날
내게 냉면 먹는 법을 가르쳐 준 분이 부모님이라면
짜장면 먹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우리 집 가사도우미님 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던 가사도우미님은 나에게 짜장면 먹는 법 뿐 아니라 영화보러 다니는 법도 가르쳐줬다.
당시에는 가사도우미라는 말은 없었고 다른 직업호칭이 있었는데,, 그냥 누나라고 불렀던 같다.
그 누나는 어린 나를 데리고 동대문극장이라는 영화관에 몇 번 갔었다.
그 누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누나의 한'이라는 영화 제목이 기억난다.
기억나는 다른 영화는 '벙어리 삼룡이'라는 영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누님은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만 보러 다닌 것 같다.
어쨌든 확실하진 않지만, 그 때 동대문극장 앞에 있던, 생애 최초의 짜장면 먹던 중국집이 들어있는 건물을 찾은 듯 하다.
지난 가을에 아주 우연히......
국물맛이 깊은 완탕누들집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가다 소호 근처에 내려서 찾아간 이 완탕누들집 주인 아저씨는 참 재미있는 분이다.
메뉴판을 보고 돼지내장이 들어있는 55 달러짜리 누들스프를 시켰는데,
손님의 주문에는 아랑곳없이 나보고 "코리안, 코리안" 하더니 자기 마음대로 20 달러 짜리 완탕누들을 가져다줬다.
20 달러란 홍콩달러를 의미한다.
3 불 짜리 국수인 셈인데, 엉겁결에 코리안이면 무조건 먹어야하는 기본국수를 본의아니게 먹게됐다.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집에 가면 별 일도 다 생긴다.
에그타르트를 사러 들른 집에 갔더니 '쓰레기는 밖에 버리라'는 한국어 호통 안내문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기도 한다.
집에서 해 먹든 나가서 사 먹든,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학처럼 소식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아이를 식모라고 불렸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와서, 많은 곤혹을 치룹니다.
학대와 성적인거 까지... 어쩜 한국 역사에서 아픔 직업일꺼 같습니다.
제 기억에 그 누나가 임신을 해서 쫏겨난것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 보면 그 어린 아이가 아마 20살 정도...
오장동 냉면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모친 곗날이면 가끔 따라 가곤 했습니다.
양은 주전자의 육수는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친께서 냉면 먹으라고 해도, 전 공짜 육수만 먹곤 하였습니다.
동대문극장 하니, 청계극장이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한테 걸릴까 떨면서 보던...
이렇게 가끔 잇혀진 기억을 일께워 주신것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프신 부모님 생각에 그냥 죄송함에...
효도도 못하고...
Utata 님께서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식모.. 그랬었죠. 공식호칭은 가정부였을텐데 '가정부'라고 부르는 경우는 10 퍼센트, '식모'라고 부르는 경우는 30 퍼센트 쯤 됐고 나머지 60 퍼센트는 '식순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당시 상경한 남녀청년들이 대부분 공장근로자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래도 노조 등을 통해 권익을 주장할 수라도 있었지만 가정부들은 그럴 수 없었죠. 고용주인 집주인, 그중에서도 여자주인의 품성에 따라 고생의 정도가 좌우되었을 것 같습니다.
가정부 임신 이야기나오면 속으로 뜨끔한 어르신들도 많을텐데, 60-70 년대 가사도우미 출신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미국처럼 me too movement 라도 일어나는 날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새삼스런 개망신 행렬이 이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